원덕희 포토에세이집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
서울내기 사진작가가 농부가 된 산골 일기
흐르는 세월의 뒤안에 묻어나는 삶의 풍경
경북 의성의 산골마을에서 농부 겸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원덕희(56)씨가 포토에세이집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를 펴냈다. 눈빛출판사. 그간 12번의 개인전을 했던 원씨는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980년대 중반 포항 바닷가로 내려가 20년 넘게 살다가 2007년에 역시 사진가이자 교사인 아내의 고향 의성에 자리를 잡았다. 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무슨 농사를 짓는가?
=밭농사를 조금 하는 정도다. 봄엔 감자, 옥수수, 쌈채소 등을 심는다. 크지 않는 규모지만 가짓수는 많다. 콩, 토마토, 산딸기, 더덕, 도라지…. 어제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었다. 시골엔 할 일이 많다. 산에 가서 뽕잎, 두릅, 엄나무, 산복숭아, 민들레 등을 수확해서 효소를 많이 담아둔다. 11월 말에 김장배추를 거두고 나면 내년 봄까지는 농한기다. 동네분들은 12월 초에 유명한 ‘의성마늘’을 심는다. 그동안 마늘은 안했는데 시작해야겠다. 점차 밭을 넓혀보려고 한다. 집 마당엔 금방 뜯어먹을 채소들과 꽃을 잔뜩 심어둬서 여기도 손이 많이 간다.
-이번에 나온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말 그대로 산골일기다. 이곳은 의성읍에서 차를 타고 오자면 20분 거리지만 걸어가자면 중간에 재를 넘어야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온다. 행정구역상 명칭은 의성읍 팔성리인데 택시기사들은 ‘하팔’(아래쪽 팔성리라는 것 같다)이라고 부르더라. 이웃동네에 인사하러 갔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하팔에서 왔다고 하니 그 동네 어르신들은 “아 아랫바지에서”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도 이젠 “아랫바지에 산다”라고 말한다. 여기엔 스물두 가구가 산다. 동네에 가게도 하나 없어 해가 지면 적막강산이다. 그저께 보니 반딧불이 반짝반짝 보이더라. 이 산골 동네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은 포토에세이집이다.
-처음 내려갔을 때 동네에 어떻게 적응했나?
=1년 넘는 동안엔 동네 어르신들을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벽 5시면 키우는 진돗개 ‘사랑이’를 데리고 1시간 남짓 ‘마실’ 돌다보면 한 두분씩 마주치는 동네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곤 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생활을 7년째 하고 있다. 그저 농사짓고 과수원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지런히 살았다. ‘사진하는 사람’이라고 살짝 소문이 나니 이장님이 ‘원 작가’로 불렀고 작은 동네라서 금방 나의 택호가 되었다. 이제 나를 불러 사진을 찍어달라는 분들도 있고 운동회, 경로잔치, 동지 팥죽 끓이는 날, 추석맞이 대청소 등을 할 때 사진을 찍어두었다. 2010년인가에는 옆집에서 상을 당했는데 나더러 “사진으로 찍어둬”라 부탁해서 상여 나가는 것부터 기록했다. 그 집 자제분들께 시디로 구워 드렸다. 이번 책에도 들어있다.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사진집이다. 전화인터뷰의 내용이 사진집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한다. 원덕희작가는 글을 많이 포함시키고 싶었던 모양인데 출판사에서 글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그래서 사진 한 장에 시어처럼 압축된 글 서너줄씩이 붙어있다. 책 31쪽엔 과수원에 떨어진 복숭아꽃잎 사진이 있고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붉은 복숭아 꽃잎이 쏟아져 내린다. 짧은 봄날이 가듯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봄이 다시 와도 우리는 젊어지지 않는다.”
산골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원덕희씨는 이 책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비장한 아름다움 같은 것은 없고 “대문 열어놓고 사는” 동네 사람들이 길을 걷고 밭을 매고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거나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는 모습들이다. 동네 돌담엔 능소화, 조롱박이 달려있고 가을 햇살을 받은 감나무의 감과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수확해놓은 땀의 결실인 고구마, 호박이 탐스럽다. 시나브로 겨울이 오면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지긋이 도회로 떠난 자식 생각에 잠긴다. 산골 동네에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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