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의 ‘연좌제 금지’ 조항이다. 개인의 범죄를 가족·친척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연좌제는 근대 인권 사상이 확립된 뒤 문명 사회에선 자취를 감춘 야만적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도 1894년(조선 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연좌제가 폐지됐다.
그러나 연좌제가 사라진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엔 연좌제의 망령이 떠돌아 다닌다. 지난 5일 선임된 이인호(78·여) 신임 KBS 이사장의 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이사장의 임명을 반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창립발기인으로 친일 거두였다”며 이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 최초로 4강(러시아) 대사를 지냈고, 10여 년간 공개활동을 해온 이 이사장에 대해 조부의 행적을 빌미로 공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연좌제 금지’가 명문화된 1980년 개헌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서울대 김철수(헌법학) 명예교수는 11일 “개헌 당시엔 친일보다는 친인척의 월북 등으로 차별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이 도입됐다”며 “요즘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처럼 반국가활동(민혁당 사건)으로 처벌받고도 사면복권 돼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는데 자신과 무관한 조부의 일까지 끌어내는 건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권에도 피해자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장인), 김근태 전 의원(형제) 등 가족·친척의 좌익 경력 때문에 연좌제 공격을 당한 경우다.
보수·진보 간 진영 싸움이 격렬할 때 연좌제는 특히 기승을 부린다. 보수에겐 친일파, 진보에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영 논리에 따른 21세기판 ‘신연좌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익을 파괴한다.
120년 전 폐지된 연좌제가 대중의 정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대해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연좌제로 인해 피해를 본 진보세력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다른 연좌제를 들이대는 건 ‘정치적 부관참시(剖棺斬屍)’”라며 “국가 에너지의 낭비를 막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선 이런 케케묵은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연좌제 논란의 폐해 중 하나는 쓸 수 있는 인재 풀을 좁힌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행정학) 교수는 “연좌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탕평인사”라며 “적합한 비전과 철학을 가진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도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친인척의 일이나 과거 전력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2012년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뇌물 요구 혐의로 지미멩 전 주 하원의원을 체포하자 딸 그레이스 멩은 “나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성명을 냈고 그는 그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의 ‘연좌제 금지’ 조항이다. 개인의 범죄를 가족·친척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연좌제는 근대 인권 사상이 확립된 뒤 문명 사회에선 자취를 감춘 야만적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도 1894년(조선 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연좌제가 폐지됐다.
그러나 연좌제가 사라진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엔 연좌제의 망령이 떠돌아 다닌다. 지난 5일 선임된 이인호(78·여) 신임 KBS 이사장의 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이사장의 임명을 반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창립발기인으로 친일 거두였다”며 이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 최초로 4강(러시아) 대사를 지냈고, 10여 년간 공개활동을 해온 이 이사장에 대해 조부의 행적을 빌미로 공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연좌제 금지’가 명문화된 1980년 개헌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서울대 김철수(헌법학) 명예교수는 11일 “개헌 당시엔 친일보다는 친인척의 월북 등으로 차별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이 도입됐다”며 “요즘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처럼 반국가활동(민혁당 사건)으로 처벌받고도 사면복권 돼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는데 자신과 무관한 조부의 일까지 끌어내는 건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권에도 피해자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장인), 김근태 전 의원(형제) 등 가족·친척의 좌익 경력 때문에 연좌제 공격을 당한 경우다.
보수·진보 간 진영 싸움이 격렬할 때 연좌제는 특히 기승을 부린다. 보수에겐 친일파, 진보에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영 논리에 따른 21세기판 ‘신연좌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익을 파괴한다.
120년 전 폐지된 연좌제가 대중의 정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대해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연좌제로 인해 피해를 본 진보세력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다른 연좌제를 들이대는 건 ‘정치적 부관참시(剖棺斬屍)’”라며 “국가 에너지의 낭비를 막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선 이런 케케묵은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연좌제 논란의 폐해 중 하나는 쓸 수 있는 인재 풀을 좁힌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행정학) 교수는 “연좌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탕평인사”라며 “적합한 비전과 철학을 가진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도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친인척의 일이나 과거 전력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2012년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뇌물 요구 혐의로 지미멩 전 주 하원의원을 체포하자 딸 그레이스 멩은 “나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성명을 냈고 그는 그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