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80] 어린 환자도 좋아하게 된 MRI

바람아님 2014. 11. 1. 11:07

(출처-조선일보 2014.11.01 정경원 KAIST 교수·산업디자인)


최첨단 의료기기인 MRI(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는 암이나 뇌 장애처럼 진단하기 어려운 난치병을 
족집게같이 찾아내준다. 원리는 자기장이 형성되는 공간 속에 환자를 들여보낸 다음, 고주파를 발생시켜 신체 내부 
구석구석을 영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MRI는 인체에 해로운 X선을 사용하지 않아 부작용이 적고, 통증이 없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20여 년 동안 GE에서 MRI 개발에 전념해온 더그 디에츠(Doug Dietz)는 늘 높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기기 성능이 개선돼 인명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MRI가 환자들, 특히 어린 환자들에게 기피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어쩔 수 없어 들어갔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어린이 환자들이 많았고, 일부 민감한 환자들은 마취시킨 
다음에야 MRI로 진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능 개선에만 집착했을 뿐, 답답하고 시끄러운 공간에 혼자 누워서 
느끼는 심리적인 공포에는 무관심했던 결과였다.
어린 환자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MRI. 디자인: 더그 디에츠, GE 헬스케어 디자인 스튜디오 매니저.
어린 환자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MRI. 
디자인: 더그 디에츠, GE 헬스케어 디자인 스튜디오 매니저.
디에츠는 문제 해결을 위해 스탠퍼드 D 스쿨에서 배운 대로 사용자와의 공감을 중시하는 '디자인적 사고'를 활용했다. 
어린이 병원 의사, 간호사, 교사 등과 함께 노력한 결과, '모험'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MRI가 디자인되었다. 
차갑게 느껴지던 기기의 외관을 보물선이나 우주탐사선으로 바꾸었고, 영상과 음향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자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진단을 받는 동안 보물섬을 찾아가거나 해저 탐험에 동참하는 
상상을 즐기게 된 것이다. 이처럼 스토리가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친화적인 디자인이 도입됨에 따라 
기피 대상이었던 MRI는 환자 만족도 90%에 달하는 기기로 탈바꿈했다. 그런 경험 덕분에 디에츠는 현재 GE에서 
'혁신 입안자'로 일하고 있다. 사람 중심 디자인으로 창의적인 혁신의 실마리를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