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50] 폐기될 뻔했던 '워크맨' 아이디어… 어떻게 회사의 運命을 바꿨을까

바람아님 2014. 10. 29. 20:40

(출처-조선일보 2013.05.22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최초의 소니 워크맨과 헤드폰 - 구로키 야스오(黑木靖夫) 디자인, 1979년 7월 1일 출시.
최초의 소니 워크맨과 헤드폰 - 구로키 야스오(黑木靖夫) 디자인, 
1979년 7월 1일 출시.

1970년대 말, 일본 가전회사 소니의 연구소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새롭게 개발되는 휴대용 오디오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를 놓고 관련 부서들 간의 
의견이 크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소니의 정체성인 '경소단박(輕小短薄·가볍고 작고 
짧고 얇게)'에 맞추어 디자인된 새로운 테이프 리코더의 시안에는 스테레오 음향 
재생 기능만 있을 뿐 녹음 기능은 없었다. 
개발 엔지니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녹음 기술을 사장(死藏)시키려 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마케터들은 녹음도 할 수 없는 리코더를 어떻게 파느냐며 항의했다. 
디자이너들은 재생 기능만 뛰어나면 완벽한 조건에서 녹음된 테이프를 구입하여 더 
훌륭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되받았다.

부서들 간의 팽팽한 기 싸움으로 자칫 폐기될 뻔했던 그 오디오가 출시될 수 있었던 
것은 소니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덕분이다. 
아키오 사장은 재생 전용 오디오를 갖고 다니며 좋은 음질의 스테레오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오히려 상품성이 클 것이라 판단하고 디자이너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더 나아가 당시에 개발 중이던 고성능 헤드폰과 연계하여 신상품을 개발하도록 해 워크맨(Walkman)이 탄생했는데, 
이는 '걸으며 음악을 즐긴다'는 의미의 일본식 조어였다.

워크맨의 초기 생산 물량은 3만대, 가격은 파격적으로 저렴한 3만3000엔으로 정해졌다. 
기획 부서에서 사장의 지시에 따라 생산은 하지만, 소니의 창립 33주년을 기념하는 사은품 정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시 1년 만에 1000만대가 팔려 워크맨은 세계 공용어가 되었고, 후속 모델이 3억대나 판매되어 소니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CEO의 창의적 판단이 어떻게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