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09 허윤희 문화부 기자)
당신이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욕망'
홍콩크리스티 경매 최고가 한국작가 홍경택 개인전
첫 풍경화 新作 10점 전시
"골프장은 욕망 투영된 공간… 서재·책은 문명이란 틀 상징"
서울 천호동 토박이인 작가는 어릴 때부터 색깔에 예민했다.
패션 장갑 공장을 운영한 부모 덕에 형형색색 원단의 색채 속에서 자랐다.
취미도 별났다. 패턴이 독특한 식물 화분을 하나씩 사모았고, 화려한 색에 반해 금붕어와 열대어를 키웠다.
중학교 때 가정방문한 담임교사가 그의 방을 보고 으름장을 놨을 정도다.
"너, 이거 다 안 치우면 예고 못 들어간다!"
홍콩 크리스티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 작가 홍경택(48) 얘기다.
지난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유화 '연필 1'이 9억6000만원에 팔리며 한국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화면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연필이 발사된 로켓처럼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작품이다.
꽉 들어찬 패턴과 화려한 색상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홍경택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서재-골프장’ 앞에 섰다. 194×259㎝.
- 정작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골프를 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5일 개막한 개인전 '그린 그린 그래스(Green Green Grass)'에선 뜻밖의 홍경택과 만난다.
처음으로 '풍경화'에 도전한 작가가 골프장, 에베레스트산, 하늘, 우주 등 풍경이 등장하는 신작 10점을 내놨다.
원색의 색조는 차분해지고 한층 톤다운됐다.
그는 "풍경 자체가 갖고 있는 자연의 색감과 맞추려면 톤다운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그린 풍경에는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골프장 주위를 서재가 둘러싸고 있는 작품 '서재-골프장'이 대표적.
민화의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 그림에서 풍경(골프장)은 극사실적으로, 사물(서재)은 단순한 색면 구조로 처리했다.
"10년 전에 골프장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는데 골프장이 어떤 곳인가 생각하다가 한국 사회에서 골프는 비싼 스포츠이고 골프장은
많은 이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라 생각했죠."
그는 이번에 골프장을 그리면서 톰 존스의 노래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떠올렸다고 했다.
"고향을 그리며 꿈에서 깨니 주변은 감옥의 회색 벽이더라는 노랫말처럼
우리가 꿈꾸는 자연과 막상 체험하는 자연은 괴리가 있다"며
"우리는 문명이란 틀을 통해 자연을 보게 된다"고 했다.
화면을 둘러싼 서재와 책은 문명이라는 틀을 상징한다.
다른 작품에선 눈 쌓인 에베레스트가 등장한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리게 됐다"며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은 욕망을 조성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불교의 '구천(九天)'을 공간적으로 해석한 작품 중 하나인 '6개의 하늘'에선 다이빙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다이빙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우아하지만 스틸컷으로 보면 표정이 고통스럽고 일그러져 있어요.
우리 삶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니까."
쉴 새 없이 에너지를 발산했던 작가는 이제 한 발짝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하는 것 같다.
즐겨 그리던 연필·책·새 같은 정물화와 우주·하늘·산 등 이질적 장면을 한 화면에 합쳤다.
터질 듯이 뭉쳐 있던 '연필' 작품도 신작에선 하늘을 배경으로 그리는 등 한층 여유가 생겼다.
하나의 구심점에서 무수한 선들이 뻗어나가는 구도를 갖는 '반추'는 연필 대신 골프채로 이뤄져 있다.
골프채의 반짝이는 헤드에 작가의 얼굴이 비친 일종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요즘도 눈만 뜨면 천호동 집 아래층에 있는 작업실로 내려간다.
그는 "스펀지처럼 가능한 한 모든 사조를 흡수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덜 지칠 것 같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070-4676-7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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