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순식간에 정지된 삶 죽음을 기억하라 …

바람아님 2014. 12. 30. 12:59
[중앙일보 2014-12-30일자]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전

화산재를 막으려 손으로 입과 코를 막은 남자는 그대로 응고돼 석고 캐스트인 ‘웅크린 남자’가 되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000년 전 로마 문명으로 여행을 떠난다. 비극이 있었기에 가능한 문물 견학이다.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재해가 한 도시의 생활상을 순간에 응고해놓았다. 기원 후 79년 갑작스런 베수비우스 폭발은 고대 로마 제국의 상업도시였던 폼페이를 화산재로 겹겹이 묻어버렸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1748년 재발견 될 때까지 종말의 모습 그대로, 죽음까지도 정지 상태로 보존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 300여 점으로 구성한 인류사의 한 조각이다. 벽에는 ‘나, 왔다 가노라’ 같은 낙서부터 선거 홍보용 문구까지, 우리 시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남아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가게 한 ‘화산 폭발의 날 이후’가 아마도 이 전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의 핵심일 것이다. 단단한 재가 거푸집처럼 그 안에 묻힌 물건이나 시신의 체적과 형태를 보존했다. 이렇게 응고된 석고를 ‘캐스트’라고 한다. 1860년대에 캐스트를 처음 고안한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석고와 배합된 인간의 뼈와 살점, 그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견고한 자태로 되살려냈다. 쓰러지거나 웅크린 채 굳어버린 그들이 이 전시의 대미다. 그 앞에서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 한마디면 족하다.

 2015년 4월 5일까지. 02-1661-5449(www.pompeii.co.kr).

정재숙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