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4-12-30일자]
"이제 또 임질(淋疾)을 얻은 지 11일이 되었다. 번다한 정무를 처리하면 기운이 노곤하다."
1438년 <세종실록>의 '망측한' 기록이다. 세종은 '임질' 때문에 국가의 주요행사인 "강무(講武·임금이 지휘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의 주관을 세자(문종)에게 맡기자"고 할 정도로 통증을 호소했다. 41살이던 1438년부터 4년간이나 임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이라는 성종과 여말선초의 대학자인 권근도 임질 때문에 경연에 나서지 못했거나 사직을 청했다. 임질이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접촉으로 옮아 요도 점막에 침입하는 성병'이라 설명한다.
그렇다면 해동의 요순이라는 세종은 물론 성종과 권근 등이 모두 스스로 성병에 걸렸음을 토로한 것이 된다. 과연 성병이 맞을까. 아마도 천하의 난봉꾼이었던 고려 충혜왕 때부터 생긴 오해가 아니었을까. 충혜왕은 아버지(충숙왕)의 후비까지 겁탈하고, 남의 집 아내와 첩을 닥치는 대로 강간한 임금이다.
1438년 <세종실록>의 '망측한' 기록이다. 세종은 '임질' 때문에 국가의 주요행사인 "강무(講武·임금이 지휘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의 주관을 세자(문종)에게 맡기자"고 할 정도로 통증을 호소했다. 41살이던 1438년부터 4년간이나 임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이라는 성종과 여말선초의 대학자인 권근도 임질 때문에 경연에 나서지 못했거나 사직을 청했다. 임질이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접촉으로 옮아 요도 점막에 침입하는 성병'이라 설명한다.
그렇다면 해동의 요순이라는 세종은 물론 성종과 권근 등이 모두 스스로 성병에 걸렸음을 토로한 것이 된다. 과연 성병이 맞을까. 아마도 천하의 난봉꾼이었던 고려 충혜왕 때부터 생긴 오해가 아니었을까. 충혜왕은 아버지(충숙왕)의 후비까지 겁탈하고, 남의 집 아내와 첩을 닥치는 대로 강간한 임금이다.
"왕이 열약(熱藥·몸을 뜨겁게 하는 보약)을 복용했다. 그와 정을 통한 여인들은 임질에 많이 걸렸다."(<고려사절요>)
원나라에 머물렀던 충혜왕은 난잡한 성생활로 몹쓸 성병인 임질을 고려땅에 퍼뜨린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의 임질이 충혜왕의 임질과 같은 병인지는 알 수 없다. <동의보감>(사진) 등은 '임질은 몸이 허약하거나 피로누적 때문에 방광에 열이 차서 생긴 비뇨기 질환'이라 했다. 특히 "나았다가 자주 발작하고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1442년)는 증상을 보면 세종의 임질은 요로결석(석림·石淋)일 가능성이 짙다.
돌 같은 것이 요도를 막아 기절할 정도의 격심한 통증이 왔다가 씻은 듯이 낫는 일이 반복되는 병이 요로결석이니까. 임질에 걸린 아버지의 음경을 입으로 빨아내어 병을 고쳤다는 효자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아마도 요로를 막고 있는 돌을 빼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세종의 임질이 100% 요로결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5세기에 무슨 세균감염의 개념이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세종 시대의 어의는 임금의 임질이 성접촉에 의한 세균감염으로 생긴 병인지, 아니면 단순 요로결석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여러 정황상 세종의 임질이 성병이 아니라 요로결석일 가능성이 짙다는 쪽으로 추론할 뿐이다.
<이기환 사회에디터>
'生活文化 > 그때그일그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은행 오디세이] 조선 왕가 궁터에 세워진 대한제국 중앙은행의 숙명 (0) | 2015.01.04 |
---|---|
[권근영 기자의 '오늘 미술관'] 하늘…조선시대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0) | 2015.01.03 |
주둥이 깨진 천덕꾸러기 中꽃병 '11억원' 낙찰 (0) | 2015.01.01 |
세종때 쓰던 '자치통감감목' 59권 완질 중국 상하이에서 발견 (0) | 2014.12.31 |
미국서 서재필 탄생 150주년 기념우표 발행 (0) | 2014.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