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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네 가지 난제

바람아님 2015. 1. 24. 11:38

[중앙일보 2015-1-23 일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마이클 그린/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의향을 처음으로 표명했다. 이 발언은 인권, 이산가족 상봉 등의 문제에 대해 대화하자는 한국 국회의 남북 국회회담 제의를 북한이 거부한 다음에 나온 것이다. 무조건적인 대화를 제안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능숙하게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비난의 중지를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와대의 계책이 성공한다면 남북대화는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청와대는 적어도 다음 네 가지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첫째, 서울은 북한의 요구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예컨대 북한의 핵심 요구 중 하나는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북으로 보내지 못하게 한국 정부가 막아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입장은,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만 국민 안전을 고려해 향후 이들 단체에 자제를 요청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는 함정이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강압에 의한 굶주림, 국민의 노예화, 강간 등 북한의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했다. 게다가 국제사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청와대에 비판적인 산케이신문 기자가 기소됐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한국계 미국인인 신은미씨가 추방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판을 막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정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청와대는 정상회담에 따른 대가를 바라는 평양의 기대에 대응해야 한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북측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확대와 비밀 현금 ‘보너스’를 선물로 줬다. 7년 후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협력의 확대를 굳게 약속했으나 그는 이미 레임덕이었다. 북한 또한 핵실험을 감행해 모든 경제협력 가능성을 무산시켰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이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된 통상적인 제한 조치를 넘어 박 대통령이 의미 있는 경제협력을 제안할 능력이 있는지, 또 제안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보면 청와대는 이산가족 상봉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보통 낮은 수준의 남북대화에서 다룰 성질의 것이지 정상회담의 안건은 아니다.

 두 번째 쟁점은 세 번째 이슈로 연결된다. 서울은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용이하게 하는 제한적인 경제협력만으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정상회담으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이 정상회담에 응한다면 그 의도는 틀림없이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 역학을 바꾸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건 없는 정상회담에 동의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거나 후퇴시키고 중단하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평양은 남북 정상회담을 증거로 삼아 ‘핵보유국 북한’과 이웃 나라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국내외에 알리고 싶어 할 것이다. 혹은 정상회담을 수단으로 서울과 베이징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정상회담을 주변국들이 분열됐다는 증거로 삼을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이 정상회담을 국내외 프로파간다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관리해야 한다.

 넷째, ‘조건 없는’ 남북 정상회담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원칙으로 외교 일반에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 정권의 지독한 인권 유린과 핵 확산을 국제사회가 비난하는 가운데 서울이 북한 지도자를 ‘조건 없이’ 만나겠다면서도 일본의 지도자에게는 계속 조건의 충족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의 그 어떤 지도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감한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담론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북한과 일본에 대한 이중 잣대 적용은 설명하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이 있으면서도 전향적인 대북 접근을 통해 도덕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장기적인 시야로 통일을 꾀하기 위해 남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 한민족 정체성의 복원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다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료시키려는 노력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워싱턴은 북한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직감을 신뢰한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서둘렀을 때 워싱턴은 노 대통령을 덜 신뢰했다. 남북회담이 가까워질수록 한국 정부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핵과 인권 문제를 위해 압박을 유지해야 하며 역내(域內)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