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12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시골 장의 느낌은 아니지만 5일에 한 번씩 동네에 장이 선다.
우연히 한 번 다녀온 이후론 될 수 있으면 장을 이용하게 됐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에서 사람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쌓아놓은 물건 구경,
사람 구경하는 맛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시장에 가면 우선 호떡 하나를 입에 물고 초입부터 가볍게 쭉 걷는다.
한번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시기별 나오는 작물이 무엇인지,
제 시기에 먹고 넘어가야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파악된다.
저번 장엔 생강 좌판이 많이 보였지만 이번 장엔 연근이 더 많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면,
생강의 계절을 지나 연근의 계절이 왔다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생강의 계절이 왔을 때 장에서 유난히 많이 보인 생선이 갈치였다면 생강과 함께 먹어야 하는 계절 식단은 갈치가 된다.
집에 오면 엄마는 그날 장 본 걸 바닥에 펼쳐놓고 하나하나 물건을 확인하며 가계부에 기록하신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내 방식으로 기록을 더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장에서 사온 것들을 장에서 본 것처럼 배치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거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시장에서 먹었던 수수부꾸미 맛, 자신의 요리 비법을 누설하신 할머니들 목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해가 지나고 기록이 쌓이면 가정사에서 일급 자료로 남게 될 게다.
- /공혜진씨 제공
촬영을 위한 전용 보자기를 찾아 깔고, 자세히 봐야 하는 형태를 가진 채소들은 공 들여 하나씩 배치한다.
그 시기에만 나오는 계절 채소는 잘 나오게 중앙에 배치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장이 서는 상황이 됐다.
단순히 동네 장에 갔을 뿐인데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게 됐다.
단순히 동네 장에 갔을 뿐인데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게 됐다.
땅콩 농사를 지었다며 주름진 비닐에 땅콩을 담아 주는 할머니의 손, 나물 파는 아저씨의 반짝이는 눈빛을 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에서 사람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눈빛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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