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14 전원경·'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작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고, 오가는 이들은 관광객에게 무관심하며, 지하철역 안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복잡하다.
파리에 처음 간 스물한 살의 겨울날, 길을 잃고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한참 헤맸던 경험은 아직도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구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구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의
'비 오는 날, 파리 거리'덕분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거리는 파리 생 라자르 역 부근의 투린 가(Rue de Turin)와 더블린 광장(Place de Dublin)이
만나는 지점이다. 널찍한 대로와 즐비한 건물들이 요즈음의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 파리는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으로 한창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 오는 날, 파리 거리'가 유난히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말끔한 건물과 넓은 도로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도심의 거리를 찍은 스냅 사진이나 동영상의 정지 화면처럼 느껴진다.
오른편의 남녀는 금방이라도 구둣발 소리를 또각또각 내면서 그림의 프레임 너머로 걸어가 버릴 것 같다.
그들 옆을 막 스쳐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절반만 그려져 있다. 물론 이런 우연성은 카유보트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카유보트는 1830년대에 개발된 사진의 효과를 그림에 적극적으로 응용한 화가였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마저도 이처럼 기품 있게 묘사될 수 있는, 참 예술적인 도시 파리. 그래서일까.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마저도 이처럼 기품 있게 묘사될 수 있는, 참 예술적인 도시 파리.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의 파리는 늘 정갈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카유보트의 그림에 포착된 생 라자르 역 인근 거리처럼, 그림 속을 걸어가는 도도하고도 세련된 신사 숙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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