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인원의 사진산책] '찰칵' 公害

바람아님 2015. 4. 16. 11:10
조선일보 2015-4-16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 안. 강의하는 교수는 수업 흐름을 끊는 소음(騷音)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한참 설명을 하다가 잠깐 뒤돌아서면 반드시 어디에선가 소리가 들린다. "찰칵."

이제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노트 필기보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것에 익숙하다. 일부 교수는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서 학생들의 폰카 촬영을 말리지 않는다. 가끔 교수가 "시험에 나올 중요한 내용"이라고 강조하면 학생들이 일제히 사진을 찍기 때문에 강의실이 마치 기자회견장처럼 셔터 소리로 이어진다. 촬영할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스마트폰 앱(application)이 있지만 대부분 확대해서 찍으면 화질이 떨어져서 학생들은 소리나는 것을 감수하고 사진을 찍는다. 또 초등학교에선 공개수업 시간에 자기 아이의 수업 듣는 모습을 찍으려는 학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이 수업 내용을 까먹을 정도라고 한다.


약간이라도 알려진 식당을 가도 비슷하다. '맛집 순례자들'은 아예 카메라를 식탁에 올려놓고 기다리다가 음식이 나오면 감사의 기도 대신 사진을 먼저 찍고 먹는다. 재미로 한두 장 찍는 것이 아니라 접시를 돌려가면서 여러 각도로 촬영하거나 인증 샷 포즈를 달리하며 계속 셔터를 누른다. 광고가 될 것을 내심 기대하는 식당 주인은 이런 행동을 막을 리 없다. 고급 식당이건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이건 다른 손님들은 이런 소음을 원치 않아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찰칵 소리를 들으면서 음식을 입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반복되는 소음은 당연히 타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우리나라 모든 휴대폰은 사진을 찍을 때 찰칵 소리를 낸다. 진동 모드나 볼륨 조절과도 상관없이 촬영할 땐 무조건 셔터 소리가 난다. '찰칵' 소리는 원래 필름 카메라 시절에 '일안(一眼)반사식(SLR·Single-lens Reflex)' 카메라의 미러(mirror)와 셔터막이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소리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얇은 스마트폰에 미러나 셔터막이 있을 리 없다. 즉 찰칵 소리는 일부러 스마트폰에 만들어 넣은 기계식 카메라의 효과음이다. 휴대폰에 카메라 셔터막 소리는 대체 왜 넣은 것일까?


국내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할 때 주변 사람이 알 수 있을 정도의 소리가 나게 한 것은 2003년부터의 일이다. 당시 관할 부처인 정보통신부는 휴대폰 카메라로 생기는 몰래 카메라 범죄 등에 대처하기 위해 제조업체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고, 그해 11월부터 모든 카메라폰은 촬영 시 반드시 65데시벨(dB) 이상의 촬영음(音)을 내도록 하는 카메라폰 사용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현재까지 적용되는 충분히 합리적인 규제 법안이다. 일부에선 스마트폰 보급에 맞춰 촬영음을 없애자는 제안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소리로 타인을 방해하는 것만 고려할 뿐, 정작 소리 없이 사진을 찍은 후에 벌어질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 등 수많은 문제를 예상하지 못하는 의견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콤팩트(compact) 카메라를 대신할 만큼 기능이 좋아지면서 아예 카메라 기능을 내세운 스마트폰 광고가 대세다. 그만큼 사진 찍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촬영 에티켓이나 문화는 기술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어디서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찰칵 소리는 '사진 찍을 땐 다 괜찮겠지' 하는 잘못된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릇된 사진 촬영 습관은 소리로만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다. 시상식이나 행사장 등 엄숙한 예식이 진행되는 곳에도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은 도를 넘게 행동한다. 행사가 진행되는 무대와 객석을 조심스럽게 피해 움직일 줄 모르고 아무 때나 불쑥불쑥 튀어나와 진행을 가로막고 흐름을 끊는다. 사진만 남기면 되고 남의 행사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최근 외국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관람객들의 셀카봉 휴대를 금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를 일부러 막대기로 긁으려고 찾는 관람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다 보면 시야가 오로지 카메라 화면에만 고정되어 전후좌우 공간을 살피지 않게 된다. 그로 말미암은 만일의 사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조치다. 꽃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화단을 밟고 들어가거나 피사체 주변의 풀이나 꽃을 모두 뽑아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좋은 사진인지 모르는 무지한 행동들이다.


전문 사진가들은 가능하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색으로 옷을 입고 조용하고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을 지킬 줄 안다. 실내에선 셔터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건으로 카메라를 감싸고 찍고, 약속된 경계를 지키고 상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법을 안다. 그런데 이러한 사진가들의 문화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촬영을 핑계로 경계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는 일은 잘못된 습관이다. 이러다 보면 자유롭게 사진을 찍던 사회적 허용치는 한계에 이르러 사방이 '금연 구역'처럼 여기저기에 '촬영 금지' 표시가 붙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즐겁고 멋진 취미가 "딱딱" 소리내며 씹는 껌처럼 타인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이 되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