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7.12 김기철 기자)
◆박훈 지음|민음사|248쪽|2만2000원
메이지(明治) 유신은 구한말 개화와 근대를 꿈꾸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모범 사례이자 콤플렉스였다.
조선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한 일본이 순식간에 부국강병을 이루고, 서구 열강과 맞먹는 국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뒤처졌을까.
도쿄대에서 일본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훈 서울대 교수는 도발적 해답을 내놓는다.
유신 세력이 뒤집으려고 했던 구체제(앙시앙 레짐) 막부가 근대화의 유공자라니?
막부는 19세기 서양 세력의 진출에 맞서 서양 문물을 앞서서 받아들이고, 체제 개혁에 나섰다.
막부는 유신 세력에 비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권력을 유신 세력에
넘기고 물러나면서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다른 나라의 구체제와 비교할 때, 도쿠가와 막부는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는 보기 드문 역동성을 갖고
있었다는 게 박 교수의 판단이다. '무능한 막부'라는 상식을 뒤엎는 평가다.
일본이 일찍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과장된 위기의식' 탓이었다는 설명도 독특하다.
지식인들은 서구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서구 열강은 일본을 침략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외세의 압력은 일본이 생각했던 것처럼
위협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구체제의 낡은 학문으로 간주된 유학(儒學)이 메이지 유신을 촉발하는 배경이 됐다는 설명도 논란이 될 만하다.
구체제의 낡은 학문으로 간주된 유학(儒學)이 메이지 유신을 촉발하는 배경이 됐다는 설명도 논란이 될 만하다.
일본에서 유학은 낡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체제를 흔드는 '위험 사상'이었다.
19세기 일본에 불어닥친 유학 열풍은 사무라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칼을 찬 군인이었던 사무라이들이 유학 경전을 강독하는 독서 모임에 드나들고,
'사대부'로서의 정체성을 학습해가며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됐다.
사무라이 계급은 메이지 유신과 이후 일본 정치의 주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이 주로 구(舊)지배층 일부의 자기 혁신에 의한 변혁이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은 흥미롭다.
메이지 유신이 주로 구(舊)지배층 일부의 자기 혁신에 의한 변혁이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은 흥미롭다.
불필요한 파괴와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질서 있고 효율적인 변혁을 이뤘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지금의 중동처럼 극적인 변혁은 파괴와 혼돈, 유혈을 대가로 지불했다.
어떤 길을 택할지는 결국 사회 구성원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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