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16 시인 최영미)
[내가 본 프리다] [1] [시인 최영미] 그녀처럼 사랑하지 않고 뭐했나, 나는
'내 몸은 전쟁터' 선언하며 자기 몸에 총을 쏜 여자…
우리를 도발하는 그녀는 자화상보다 사진이 예쁘다
난 그 여자 불편해. 자기만 그렸잖아. 리베라와의 관계도 평등하지 않았어.
남편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그림에서도 다 보여.
프리다 칼로에 대한 S의 비판을 들으며 내 속이 불편해졌다.
프리다처럼 몸이 여러 차례 부서지고 병실에서 지내다 보면 자기를 오래 들여다볼 수밖에….
칼로를 위한 변명이 내 입에서 나오려다 멈추었다.
초상화가 압도적이지만, 칼로가 자신만 그린 건 아니다.
그녀 작품의 3분의 1가량이 자화상인데, 자화상이 강렬해 다른 그림들이 묻혔다.
칼로가 스스로에게 도취했다기보단 우리 시대의 대중이 칼로의 이미지에 도취됐다.
1989년이던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하고 몇 달 지나 프리다 칼로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학교 밖에서 열린 공개강의에서 어느 평론가가 멕시코 벽화운동을 소개했다.
6월 항쟁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때라 미술계에도 민중미술 바람이 거세어, 사회주의자도 아니지만 누구나 '혁명'을 말할 때였다.
늦깎이인 나는 학과 공부는 뒷전이고 어린 친구들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귀동냥에 열심이었다.
슬라이드를 틀어주느라 캄캄한 실내, 리베라·시케이로스·오로츠크의 거대한 벽화들 옆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찌푸린 표정, 도도한 자세에 주렁주렁 장신구를 매단 여자가 리베라의 부인이며 트로츠키의 애인이었다고?
한때 프리다 칼로의 연인이었던 유명 미국 사진가 니콜라스 머레이가 찍은 사진 ‘하얀 벤치에 앉은 프리다’ (1938년 작). 프리다 칼로가 그린 자화상 속 그녀보다 연인의 렌즈에 담긴 그녀가 훨씬 아름답다. /베르겔 재단 제공 |
젊은 나는 그녀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들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 대단한 리베라의 벽화들은 세월 속에 잊혔지만, 프리다의 작은 캔버스는 살아남았다.
'내 몸은 전쟁터다' 선언하며 자신의 벗은 몸에 총을 관통시킨 여자. 웃는 프리다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 자신을 응시한 자화상보다 (애인이 찍은) 사진 속의 프리다가 더 매력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숄을 두르고 앉은 프리다.
긴 치마 밑으로 살짝 펌프스(발등이 드러나는 여성용 구두)가 보이는데, 꽤 높은 하이힐 아닌가.
놀라며 나는 프리다 칼로를 이해했다.
화장하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게다.
목의 주름은 물론 자신의 상처를 낱낱이 열어 보인 그림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든 연민을 느끼든 간에,
그녀는 우리를 도발해 말을 하게 한다. 글을 쓰게 충동한다.
프리다처럼 사랑하지 않고, 열심히 쓰지 않고 그동안 뭘 했니 너는?
늦은 밤, 자지 않고 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프리다 칼로 전시 보려면…]
▲일정: 2015년 6월 6일~9월 4일(전시 기간 중 휴관 없음)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입장료: 성인 1만3000원, 중·고교생 1만원, 어린이 6000원
▲홈페이지: www.frida.kr
▲문의: (02)801-7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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