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딸바보 아빠가 여걸을 만든다…제우스 머리를 쪼개고 태어난 아테나

바람아님 2015. 7. 31. 00:42

매경이코노미 2015.06.29

 

‘잠자는 비너스’, 1630년,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지아는

당대 유명 화가의 딸이었다. 아버지와 동지로서 또는 갈등하고 반목하면서 미술사에

빛나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요즘 아빠들은 딸을 원한다. 예전의 아빠들처럼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다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딸바보 아버지’라고 매스컴에서 떠들어댈 때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아빠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딸바보 아빠에 합류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부류들이다. 호들갑스럽게 딸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일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서툴다. 상냥한 대화법을 배운 적이 없는 한국 남자답게(?) 위악적인 말투와 태도로 딸의 심사를 망쳐버리기 일쑤다. 아빠로선 애정 표현인데, 딸에겐 시비로 들리니 참 난감한 시추에이션이 아닌가.

어쨌거나 딸과의 관계가 서먹한 당신은 역사 속의 딸바보 아빠에게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단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의 딸이 당신을 매개로 남자를 고른다는 사실이다.

역사상 가장 최초의 딸바보는 그리스신화 속 제우스다. 외도를 일삼았던 제우스에게는 수많은 딸이 있지만, 그가 가장 의지하고 사랑했던 딸은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다.

사실 아테나는 제우스가 홀로 낳은 딸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제우스의 첫 배우자는 헤라가 아니라 메티스였다. 티탄족 출신의 메티스는 대양을 지키는 여신으로 그 지혜가 널리 알려진 여신이었다. 제우스가 메티스와 결혼하자 할머니 가이아는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와 할아버지인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자 제우스는 임신한 메티스를 작게 만들어 삼켜버렸다. 해산이 가까워졌을 무렵, 제우스는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극심한 진통에 시달린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달려온다.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단박에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니 금빛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든 채 괴성을 지르면서 아테나가 태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제우스가 혼자 낳은 딸과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을 비교해보는 일. 아테나 대 헤파이스토스! 아무래도 남자가 혼자 낳은 딸이 압도적으로 능력이 있다는 거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조차 무척이나 가부장적이다.

제우스는 본의 아니게 혼자 낳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기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딸바보가 된 제우스는 자신을 상징하는 천둥과 방패를 아테나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를 신뢰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테나는 인간 영웅들의 친구이자 보호자를 자청한다. 아테나는 페르세우스와 이아손과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들에게 충고를 해주고 돌봐주고 지켜주며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 주로 멋지고 잘생긴, 자기 말을 잘 듣는 인간 오빠들과 친한 셈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딸바보 아버지들의 딸들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채 처녀신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아버지들의 무의식에는 딸을 수녀로 만들고 싶은 심정이 숨어 있다. 어찌 수컷의 본능을 가진 놈들에게 귀하디 귀한 딸을 맡길 것인가!?

아테나가 엄마가 아닌, 아빠의 딸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서구 문학사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재판인 ‘오레스테스 사건’이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아가멤논)를 살해한 어머니(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아폴론이 오레스테스를 변론해 주장하기를, 어머니란 단지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키우는 역할에 불과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아테나의 탄생을 들었다. 아테나 역시 이복동생인 아폴론 편을 들어 오레스테스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함으로써 어머니와의 연대감보다는 가부장제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판결을 이끌었다.

 

‘미네르바(아테나)의 탄생’, 1688년경, 르네 앙투안 우아스.

 

현대처럼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보편적이 된 시대의 딸들에게는 아버지가 추구하는 세계가 중요하다. 사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모든 남성 관계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세계는 삶을 구획 짓고 정돈해주는 질서 체계, 문자와 기호의 세계, 합리적 언어 소통의 세계다. 달리 말해 아버지의 세계는 권위, 위엄, 법과 질서, 정신과 지성의 세계다.


근대 여성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된다는 것은 드물었다. 현대 이전,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이 화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가 화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들은 아버지 밑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화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거나, 딸이 아들보다 훨씬 더 재능을 보일 때 아버지는 딸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지했다.

딸들은 아버지와 대적하며 아버지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17세기 로마공국의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는 카라바조의 친구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라는 당대 유명 화가의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모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작품을 함께 제작하는 동지로서, 한때 아버지와 갈등하고 반목하기도 했지만 미술사에 빛나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결국 아버지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타시에게 강간을 당해 쫓기듯 피렌체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그녀는 메디치 가문의 도움으로 여성 화가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피렌체의 미술가 길드 겸 대학에 최초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었다. 훗날 코지모 2세로부터 “아버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0세기를 빛낸 여성 화가들 역시 대부분 아버지와 특히 사이가 좋았다.

카미유 클로델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조각가였다. 첫아들을 잃고 늦게 얻은 맏딸에게 언제나 넉넉한 지원군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결국 그녀는 30년 동안 수용소에서 단 하나의 작품도 만들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다. 단 이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가 작품의 근간이 됐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그녀는 아버지의 주목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아버지가 가정교사 등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일이 그만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멕시코의 여걸 프리다 칼로 역시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와 무척 친했다. 그녀는 냉담하고 정이 없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지 못한 반면, 우울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줘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딸이 됐다. 프리다는 시와 예술을 사랑했던 아버지와 연관된 물건들, 즉 시집을 비롯한 수많은 책들, 카메라, 렌즈, 인화작업실 등으로 이뤄진 아버지의 세계를 동경했다. 그녀가 멕시코의 유명 화가 디에고 리베라처럼 나이 많은 남자의 세 번째 부인이 된 것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여자들이 곧잘 저지르는 사랑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즉 딸이 아버지랑 친하다 보면 나이 든 남자를 사랑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아버지에 대한 무한신뢰는 자녀로 하여금 세상이 견딜 만하고 정의로운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많은 근대 여성 화가들의 유년 시절을 보면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점철된 경우가 많다.

어쩌면 아버지는 딸들에게 ‘이상적 세계’라는 학교에 입문하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메신저이자 멘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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