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7.28 화가 황주리)
[내가 본 프리다] [5] 화가 황주리
서른에 마주했던 고독한 '보석', 프리다

가장 반짝이는 보석 중 하나였다. 딱 서른 살에 부푼 꿈을 안고 뉴욕 맨해튼에 도착한 고독한 내 눈앞에
던져진 화두가 바로 프리다 칼로였다.
1980년대 말 어느 오후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아무 정신없이 소호 거리를 거닐다 들어간 책방에서
1980년대 말 어느 오후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아무 정신없이 소호 거리를 거닐다 들어간 책방에서
한눈에 들어온 프리다 칼로 화집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긴장된 손으로 화집을 넘기며 나는 그녀
그림의 섬뜩한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유년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세 때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뒤 서른두 번의 수술로 점철된
그 고통스러운 생애를 마흔일곱이라는 젊은 나이로 마감하면서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나는 기꺼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피가 뚝뚝 떨어질 것같이 아프게 살아 숨 쉬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만난 뒤 나는 자신을 향한 연민을 전부 갖다버렸다.
'나는 기꺼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피가 뚝뚝 떨어질 것같이 아프게 살아 숨 쉬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만난 뒤 나는 자신을 향한 연민을 전부 갖다버렸다.
끊임없이 계속된 육체적 고통 외에도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 받는 정신적 고통 또한 그녀가 지니고 산 숙명이었다.
신은 절대 완벽한 선물을 주지 않는다.
남편이자 동료였던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를 평생 고독의 갈증에 시달리게 한 애증의 연인이었으나,
그 고독은 그녀에게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그림 세계를 낳게 한 화두가 된다.
1953년 프리다 칼로가 스케치북에 그림 엽서를 붙여 완성한 ‘파리 두 마리가 있는 콜라주’. /베르겔재단 제공 |
그녀가 있기 전 세상에 남은 여성 화가의 이름이 있었을까?
미국의 조지아 오키프와 우리나라의 천경자,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최욱경을 떠올린다.
그들이 아무리 고독했다 한들 프리다 칼로의 고독의 무게를 알았다면 삶에 위로가 되었으리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여성 화가는 결코 남성 화가보다 그 존재감이 작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개별적이며 개인적인 특수성이 예술의 근본 가치 중 하나라는 점에서 볼 때 뛰어난 여성 작가의 작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처럼 빛난다.
그런 점에서 프리다 칼로 그림의 섬세하고 개인적인 특수성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민중 혁명을 지향하는 그림의 보편성을 뛰어넘는다.
그녀만큼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그려낸 화가는 세계 미술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녀만큼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그려낸 화가는 세계 미술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 보석 같은 그림들을 이십여년이 흘러 한국에서 마주하니 감개무량하다.
소호의 책방에서 프리다 칼로를 만난 뒤 나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 멕시코 전역을 여행했다.
가슴 뛰는 시간들이었다. 프리다 칼로와 함께했던 나의 서른 살, 아,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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