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책/Books] 메릴린 먼로의 섹시미, 독서로 완성됐다

바람아님 2015. 8. 9. 07:52

(출처-조선일보 2015.08.08 이한수 기자)

18세기까지 독서는 남성 전유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 이후 여성도 당당히 책 읽기 시작
독서광으로 알려졌던 먼로, 수영복 입고 '율리시스' 읽기도

여자와 책 책 사진여자와 책 | 슈테판 볼만 지음 | 유영미 옮김 | RHK | 424쪽 | 1만6000원

1783년 독일 잡지에 여성의 책 읽기에 대한 글이 실렸다. 
'10년 전만 해도 젊은 여성 중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읽는다 해도 요리책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10년 전부터는 여성들이 거의 모든 것을 읽는다. 
우리의 아름다운 성(性)이 책에 빠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 살림을 하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18세기 여성이 책을 읽는 일은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됐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 살림을 해야 할 여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금은 여성이 남자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 
2013년 우리 출판 통계에서 여성 독서율은 63.3%로 남자 61.5%보다 더 높다. 
250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남성의 일이었던 독서는 이제 여성 지배적인 현상으로 자리한 것이다.

독일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 로테에게 시를 읽어준다. 
둘은 춤을 추다가 소나기가 쏟아지자 잠시 몸을 피한 틈에 신음하듯 '클롭슈토크'라고 외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당시 클롭슈토크라는 이름은 연인들의 암호로 사용됐다. 
클롭슈토크는 미혼 여성에게 시를 읽어주는 낭송회로 인기를 얻은 시인이다. 
미혼 여성들은 젊고 잘생긴 이 작가가 읽어주는 시를 듣기 위해 기꺼이 입장료를 냈다. 
낭송회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작가에게 키스를 했다. 당시 여성에게 독서는 감정을 해방하는 수단이었다.

'여성 문학''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에서 비롯된다.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작품을 쓰고 독자층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스틴이 1811년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을 썼을 때 작가 이름은 '어느 여성(By a Lady)'이었다. 
2년 후 낸 '오만과 편견''이성과 감성을 쓴 여성 작가'로 표기됐다. 
여성 작가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 제목으로 소비됐다. 19세기에도 여성의 독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오스틴은 이런 시각을 바꿔놓았다. 
오스틴"여성들이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면 책, 특히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 독자들은 소설 속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나아갔다. 
여성의 독서는 더 이상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1955년 3월 뉴욕 한 호텔에서 책을 읽는 모습. 먼로의 책 읽는 모습에 남성 팬들은 “몰입하는 모습이 더 섹시하다”고 했다.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1955년 3월 뉴욕 한 호텔에서 

책을 읽는 모습. 

먼로의 책 읽는 모습에 남성 팬들은 

“몰입하는 모습이 더 섹시하다”고 

했다. 

/Corbis/토픽이미지


'섹시 심벌' 여배우 메릴린 먼로는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먼로는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을 순회할 때 도스토옙스키, 마르셀 프루스트, 프로이트를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촬영장에는 릴케의 시집을 들고 나타났다. 단지 연출은 아니었다. 

먼로는 때때로 서점에 들른다고 설명했다. 

"몇 권을 슬쩍 읽어보고 관심 있는 내용이 있으면 책을 사요. 이 책은 어제 저녁에 산 거예요." 

어렵기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수영복 차림으로 읽는 먼로의 모습이 남성지 '에스콰이어'에 실리자 

남자들은 열광했다. 

영국 작가 재닛 윈터슨은 "이 사진은 완전히 몰입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절대적인 몰입보다 더 섹시한 것은 없다"고 적었다. 

먼로는 독서에 에로틱한 기운을 불어넣은 '뮤즈'였다.


1960년대 이후 책 읽는 여자들은 지성계를 장악해 나간다. 

수전 손태그(1933~2004)는 지성계를 압도한 지적 스타였다. 

소설가이자 평론가,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그는 출세주의에 빠진 학계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교수들의 경직된 태도에 넌더리가 난다"면서 뉴욕의 지식인들에게 팝아트와 대중문화 같은 현실의 진가를 인정하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예술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손태그는 독서로 쌓은 지성을 바탕으로 여성 지식인을 얕잡아 볼 수 없게 했다.

독일 작가인 저자는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여성 작가와 독자에 얽힌 흥미로운 스토리로 '책에 미친 여자들의 세계사'를 정리한다. 

독서를 통해 세상의 편견을 넘어 자신의 길을 찾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어딜 보든지 책 읽는 여자들이 눈에 띈다. 여자들은 삶을 견디기 위해 책을 읽는다. 

전형적 남성의 행위였던 독서는 이제 누가 뭐래도 여성적인 삶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