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0.1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웃음 가마처럼 작은 판잣집 작은 창 열지 않았더니 섬돌 앞에는 다람쥐가 오락가락 추녀 끝에는 새가 들락날락한다. 메밀을 껍질째 방아에 찧고 이파리가 붙은 무를 통째로 갈아 국을 끓이고 만두를 만들어 먹고 나니 낄낄낄 웃음 나온다. |
書笑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0세를 전후하여 강원도 강릉에 머물 때 지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전국을 방랑하다 잠깐 정착의 시간을 보내던 중이다.
겨우 한 사람 들어가 앉을 만큼 작은 집이다.
문을 닫아놓고 있었더니 다람쥐와 새가 제집으로 알고 드나든다.
먹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메밀을 대강 찧고, 이파리도 떼지 않은 무를 갈아서 끼니를 때운다.
그래도 모양은 국이요 만두니 내겐 성찬이다.
다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낄낄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세상 돌아가는 게 우스운지 내가 하는 짓이 우스운지 알 수는 없어도 뱃속에선 자꾸만 웃음이 밀려 나온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한시] 실록 편찬을 마치고 (0) | 2015.10.24 |
---|---|
[정민의 世說新語] [337] 작문오법 (作文五法) (0) | 2015.10.21 |
[정민의 世說新語] [336] 삼환사실(三患四失) (0) | 2015.10.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바위 아래 고요한 서재 (0) | 2015.10.11 |
[황종택의新온고지신] 노하천고추기청(露下天高秋氣淸) (0) | 2015.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