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0.27
제2 주제라고 하지만 그 내용이 첫째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적으로 후에 나온다는 것뿐이다. 그 비중은 같다. 때로는 차이콥스키의 ‘비창교향곡’처럼 두 번째 주제가 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작곡가들은 두 개의 주제를 서로 대조가 되게 만든다. 앞의 것이 씩씩하면 뒤의 것은 부드럽게, 앞의 것이 화성적이면 뒤의 것은 선율적으로 만드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개의 주제는 반드시 서로 다른 조(調)로 되어 있다. 조만 다른가? 아예 장조와 단조로 그 선법이 다를 때도 많다. 말하자면 두 주제가 노는 지평을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둘의 출신성분이랄까 성격을 분명하게 구별해 놓는 것이다. 예컨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1악장에 나오는 두 개의 주제, “타타타 타-” 하는 강렬한 첫 주제와 그 얼마 후에 나오는 흐르는 듯한 선율의 두 번째 주제는 각각 다단조와 내림마장조다. 이렇게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두 개의 주제를 제시한 다음 그 둘의 대립과 갈등, 수렴과 화해로 음악을 풀어나가면 할 얘기도 많아지고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얼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주제가 대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 조가 다르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두 주제를 준비 없이 부딪치게 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다름이 너무 커서 이상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가는 두 개의 주제가 하나의 곡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각각 자기 주장만 하는 두 부분으로 쪼개져 버린다.
첫 주제를 제시한 다음 작곡가들은 제2 주제가 나오기까지 한참 작업한다. 제시된 주제를 음미해 보고... 이런저런 상황에 맞춰 다시 확인해 보고... 하면서 은근슬쩍 조를 옮겨간다. 두 번째 주제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이 부분을 연결구라고 하는데 좋은 작곡가는 이 연결구를 흥미진진하게 만들 줄 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선율을 써내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 요청된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이끌려가는 사람이 그 의도를 의식하지 못하고 따라오도록 인도하는 능력이다. 성급한 진행이나 서투른 연결은 금물이다. 무성의하거나 무개념의 연결은 곡을 깨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두 개의 주제가 다 제시된 이후에는 일단 제시부가 종결되고 곧이어 발전부가 뒤따른다. 발전부는 용광로 같은 곳이다. 여기서 앞에 제시된 주제들이 때로 격렬하게, 때로 치밀하게, 또 때로는 집요하게 충돌하고 해체되고 음미된다. 그러는 동안 군더더기와 껍데기는 떨어져 나가고 주제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부분만이 남는다. 음악은 점점 고조돼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발전부의 끝이다. 그리고 마치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듯이 곡의 첫머리로 돌아간다. 재현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재현부는 제시부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앞에서 다른 지평에서 제시됐던 두 개의 주제가 이번에는 같은 지평에서 재현된다. 발전부라는 용광로를 견뎌내면서 두 주제 사이의 다름이 극복된 것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만들어지니 교향곡이나 소나타 같은 곡을 들으면 큰 규모도 규모려니와 뭔가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본 것 같은 스릴과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연결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다른 가치, 다른 주장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따로 놀지 않도록 은근슬쩍 이어주는 그런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도 발전부 같은 장(場)이 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이상들이 모여 서로 부대끼면서 그 껍데기는 벗겨지고 알맹이만 남아 “우리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며 모두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그런 장이. 이 시대의 멋진 교향곡을 위해….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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