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인도적인 문제라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겠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주판알을 튕겨야 할 가장 정치적인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역량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남한에 뒤처지고 있는 북한이 남한과의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카드가 이산가족 상봉이기 때문이다.
잘사는 남측 가족과 상봉을 하고 나면 북측 가족들이 여러 가지로 동요할 수 밖에 없지만, 북한은 남한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부담을 무릅쓰고 이산가족 상봉에 응한다.
남북관계가 비교적 좋았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꾸준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정부가 매년 대규모의 쌀과 비료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필자에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남북관계의 핵심축은 이산가족 상봉과 쌀, 비료의 교환관계에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볼 때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이 우리에게 양보하는 카드로 볼 수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북한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최근 상황을 조망하기 위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 사이에 맺어진 ‘8.25 합의’ 이후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자.
● ‘8.25 합의’ 이후 북한이 양보한 것과 얻은 것
‘8.25 합의’ 이후 북한이 양보한 조치는 크게 볼 때 장거리로켓 발사 보류와 이산가족 상봉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양보조치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고, 장거리로켓 발사는 북한이 발사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다 발사하지 않은 만큼 애초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북한의 양보조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보조치를 통해 북한이 얻어간 것은 무엇인가? 우선 류윈산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북한이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할 만큼 소원해졌던 북중관계는 이번 류윈산의 방북을 통해 어느 정도 정상화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북중관계가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북한이 당창건 70주년이라는 중요한 행사에 중국의 고위급 인사를 방북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북중관계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다는 점은 대내외적으로 북한이 거둔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류윈산의 방북과 함께 북한이 시도했던 것은 평화협정 논의의 장 마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0월 7일 외무성대변인 담화에 이어 17일 외무성 성명이라는 높은 수준의 의사표현 방식을 통해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했다. 북한이 장거리로켓 발사를 보류하며 대화 의지를 보인 만큼, 미국도 이에 상응해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는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한미의 냉담한 반응으로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비핵화의 초점을 흐리는 평화협정 논의에 끌려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 한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장거리로켓 발사 보류라는 양보조치로 얻어간 것은 류윈산 방북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기에는 뭔가 계산이 안맞는 듯 하다. 북한이 양보한 것 치고는 얻어간 것이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산가족 상봉은 보통 북한의 대남 카드, 장거리로켓 발사는 보통 북한의 대외(대남을 제외한 의미의) 카드로 인식돼 온 것으로 볼 때, 이산가족 상봉을 위의 계산대에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은 대남전략이라는 별도의 계산대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얻어간 것은?
그렇다면, 대남전략 차원에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양보카드로 남한으로부터 얻어간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은 아직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예전처럼 대규모 쌀 지원을 얻어가든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분야의 반대급부라도 논의돼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없다.
긴 안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는 것이라면 북한이 남북대화라도 시동을 걸어야 할텐데, ‘8.25 합의’에서 약속된 남북간 당국 회담이 성사됐다는 얘기도 아직은 없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아마도 남북 당국간 회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북한의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보면, 수세에 몰린 듯한 박근혜 정부에게 대화를 제의해 정치적으로 박근혜 정부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8.25 합의’ 이후 장거리로켓 발사 움직임과 보류, 평화협정 체결 제안, 당국 회담 없는 이산가족 상봉 등 북한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보가 그리 정교해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의 행보가 정교하지 않다는 것은 앞으로의 북한 문제 또한 상당히 가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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