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접대원 양윤미]이산가족 상봉의 주인공은 ‘북한미녀’인가

바람아님 2015. 11. 4. 11:02

[비평] 북한 안내원 보도에 외모 품평회까지…여성 대상화, 한국전쟁·군부독재의 유산인가


미디어오늘 : 2015-10-24  


지난 20일~22일 진행된 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주인공은 북한 안내원 양윤미씨였다. 국가권력이 강제로 가족을 떼어놓고는 선심 쓰듯 남측 389명과 북측 141명만 추려 얼굴만 보게 하는 이 ‘잔인한’ 행사에서조차 ‘북한 미녀 접대원’이 돋보였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다수 ‘북한 미녀’ 소식 중에서도 김일성대학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글은 눈길을 끈다.  

 

지난 22일 블로그 동아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에 올라온 <이 미모로도 5과에 뽑히지 못한 이유는?>이라는 글은 양윤미씨에 대해 “제가 봐도 이쁩니다. 저도 미인에 약한 아저씨인가 봅니다”, “이번 행사장에 일부러 미녀만 투입했나 보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아가씨들의 미모는 별로” 등으로 시작했다. 


이어 주 기자는 “‘이렇게 이쁜 아가씨가 왜 5과에 뽑혀 가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5과에 뽑히지 못하는 3가지 경우(출신성분이 걸린다, 질병이 있다, 처녀가 아니다)를 나열했다. 북한의 간부 5과란 북한 중앙당에 속한 부서 중 하나로 김정일, 김정은 등을 위해 일해 ‘현대판 궁녀’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특히 주 기자는 5과가 될 수 없는 이유 중 ‘처녀가 아니다’에 대해 “5과는 엄격한 검사를 하기 때문에 성경험이 있으면 뽑히질 않는다”며 “양양처럼 예쁜 아가씨는 달라붙는 남자가 많기 때문에 순결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성차별이며 폭력이다. 이런 문화에 기초한 사회는 남성 간 차별이나 폭력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짓궂은 장난’이나 ‘과한 농담’ 정도로 폄하하거나 심지어 ‘호감의 표현’으로 변질시킨다. 


 

   
22일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 화면 갈무리.
 

이번 ‘북한 미녀’ 보도는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에서부터 시작됐다. 연합뉴스는 지난 21일 <‘이산상봉’ 미소가 아름다운 북측 미녀>를 통해 북한 안내원 양윤미씨의 사진을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양씨의 사진만 실은 기사를 세 번이나 보도했고, 금강산 소식을 담아 <‘이산상봉’ “와! 예쁘다”…북측 미녀 접대원에 상봉단 눈길>이라는 기사도 보도했다. 국내 언론인들의 보도도 다르지 않다. 같은날 SBS는 <빼어난 미모의 북한 접대원…현대적 ‘서구형’ 추세>에서 “일부에서는 이들의 외모를 두고 쌍꺼풀 수술을 했다거나, 얼굴 성형을 한 것 같다는 등의 분석도 내놓고 있다”며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의견들도 함께 전했다. 


이어 종편에서도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22일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에서는 김태현 변호사가 “전지현과 같은 미모인데 북한에서 태어나 아쉽다”고 하자, 북한군 중위 출신의 탈북자로 소개된 김정아씨가 “저 나이(18세)에 저 자리에 있다는 것은 전지현 못지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날 출연자들은 조명애, 이설주, 양윤미를 ‘북한 3대 얼짱 미녀’라며 누가 더 예쁜지 인물 품평회도 진행했다.


이런 보도가 나온 22일은 이산가족이 다시 생이별을 하는 날, 그들에게는 다시 한 번 한국전쟁의 아픔이 떠오를 만한 날이었다.  

‘북한 미녀 접대원’에 이어 ‘북한 여기자’도 등장했다. 같은날 채널A는 <北 취재단 홍일점 女기자…“南 전역 연기 놀랐다”> 보도를 통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 김숙미 기자의 취재모습을 보도했다. 일련의 보도는 여성이란 ‘관찰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관찰의 대상은 보는 자가 아니라 보이는 자다. 보이는 자는 보는 자보다 약하다. 그리고 보는 자를 위해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즉 ‘북한 미녀 접대원’ 보도는 여성이 남성에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둔 행태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전달하러 간 언론이 굳이 이런 차별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게 필요했을까? 북한 여성에 대한 관심이 처음은 아니다. 이 역시 가부장 문화 시선이 깔려있다.  


지난 22일 조선일보 <북한 美女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 기사에서는 지난 2003년 세계학생스포츠대회인 유니버시아드에서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이 비에 젖은 것을 떼어낸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와 현장 경찰관과의 대화를 전했다. 

당시 경찰은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 사람들 미녀 응원단이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특수요원”이라며 “순식간에 3명씩 두 조(組)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손깍지를 끼니까 다른 한 사람은 이걸 밟고 나무 위로 후다닥 뛰어올라갔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플래카드를 떼어냈다. 이게 평범한 20대 초반 아가씨들이냐”고 했다. 


‘20대 초반 미녀의 아가씨’는 ‘고도로 훈련된 특수요원’이랑 얼핏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동적으로, 보이기만 할 대상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능동적으로 할 때의 불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정신의학자 라캉이 “남자에게 여성은 창녀 아니면 어머니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나 ‘백치’를 ‘미(美)’로 보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이다. 


   
▲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화면 갈무리.
 

한국과 북한은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에 대해 묘한 우월의식을 느끼며 전방에 복무한 사람이 후방에 복무한 사람을 깔보는 사회다. 이런 군사주의문화 사회에서 ‘군대도 가지 못한’ 대다수 여성들은 열등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상황에서 미녀를 부각하고 여성에 대한 외모를 차별하는 시선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이 이런 차별을 확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는 여성들이 군 체험하는 모습까지 구경하기 시작했다(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2). 평화학자 정희진에 따르면 성(性)은 가장 늦게 진보한다. 뒤집어보면 성(性)의식마저 퇴보하는 한국사회는 전체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걸까? 한국전쟁과 그 이후 군부들이 한반도에 뿌려놓은 성차별의 잔재는 이산가족의 슬픔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