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11 최보식 선임기자)
YS 시절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으니까 세간에 이런 말이 돌았다
"진수성찬 먹어도 좋다… 나라나 잘 좀 챙겨라" 그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한상균씨 체포 소동은 한 사건일 뿐이다. 그를 잡아넣어도 세상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경제와 일자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노동 개혁 5대 법안'이 통과되는 것도 아니다.
올해 정기국회는 끝났고, 임시국회가 열려도 그 쟁점 법안이 처리될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할 만하다.
"만날 앉아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집안싸움에만 매달리는 야당에는 이런 비판도 과분하다. 야당은 차라리 입을 봉(封)하는 게 낫다.
시도 때도 없이 민생(民生)을 취미처럼 떠드는 것 자체가 민생에 대한 모독이다.
결국 나라를 끌고 가는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형편없는 야당 몫까지 감당해야 한다.
'립서비스'만 하는 야당을 질타한 마당에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한숨만 쉰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느냐"고 말한 것처럼, 국회와 야당을 향해 퍼부어대는 걸로 대통령 임무 끝이 아니다.
여기서 멈추면 대통령도 국민을 향해 '립서비스'한 것밖에 안 된다. 대통령이라면 실제 일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도 간절한 심정으로 뛰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대통령은 아주 쉬운 것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청와대에 야당 의원들도 불러 함께 식사하라"는 주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대통령은 삼시세끼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라고 했다.
YS 시절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내놓으니까, 세간에서는 "진수성찬을 먹어도 좋다. 나라나 잘 좀 챙겨라"는 말이 돌았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살림 걱정하지 말고 각계각층 사람들을 불러 여러 얘기를 들었으면 한다.
대통령 자리에는 최고급 정보가 집중되겠지만, 식탁에서 살아있는 말은 문서의 정보와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
취임 초부터 대통령에게는 유독 이런 충고가 많았다.
대선 당시 기여한 원로(元老) 정치인들조차 "내 주위에서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판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고 했다. 언론에는 보도가 안 된다.
보도돼서는 안 될 사람들만 청와대에 몰래 들어가서 그런가.
대통령의 '소통(疏通)'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오늘은 누가 초대받았는지 세상에 좀 알렸으면 한다.
야당을 청와대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대통령만이 가진 최고 무기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이 되어 청년들의 희망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쪽을 택한다. 속 시원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본인의 족쇄로 돌아온다.
여당이야 눈치를 보겠지만 야당이 겁나서 대통령 말을 듣겠는가.
반감만 자극해 대통령의 앞길을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국회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는 반대가 야당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뜻대로만 하고 싶으면 '삼권(三權)분립'의 헌법 정신부터 손보는 게 옳다.
그렇지 않다면 야당을 청와대로 불러 밥을 함께 먹는 게 현명하다.
못 마시는 술을 마시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더욱 좋다.
그런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의 비협조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해도 '소통'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야당이 쉽게 설득될 리 없다.
노동 개혁 법안 반대에는 야당도 그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근로자 파견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금지 직종을 줄이는 것에 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 악법(惡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격한 논쟁이 될지 모른다. 대통령이 그런 논쟁까지 다 이길 수는 없다.
서로의 주장만 말하다가 헤어져도 괜찮다. 그런 뒤 다시 불러 또 밥을 먹으면 된다.
초청을 거절하면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야당 의원들도 인간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면 야당 태도가 안 바뀔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에는 폭탄주도 제조했다. 본인은 못 마시는데 좋아서 그랬을 리 없다.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노력까지 했을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이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는 대통령이 왜 야당을 청와대 식탁에 초대하지 않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불경기에다 청년 일자리가 이렇게 절실한데 대통령은 무엇을 가리는가.
노동 개혁 법안은 연말까지 처리가 안 되면 허공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 살린다고 할 수 있겠어요?"라는 대통령 말대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야당을 불러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야당을 몇 번 부르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현 경제 상황을 얼마나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국민은 보게 될 것이다. 국민이 "우리 대통령은 할 만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게 대통령 뜻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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