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2.12
사회가 온통 뿔났다. 도처에 성난 사람들이 폭발 일보 직전의 얼굴로 배회하고 있다. 어찌된 게 늘 앓는 소리만 하는 경제에 노여워하고, 그걸 살려내는 데 늘 실패만 하는 정책결정자들에게 분노하며, 그런 사정 나 몰라라 제 잇속만 챙기는 정치권에 분개한다. 남 얘기엔 귀 막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재계와 노동계가 서로에게 격분하고, 그 사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이 앞선 세대에 분격한다.
정리해고에 격노해 송전탑에서 171일 동안이나 고공농성을 펼쳤던 사람이 폭력시위를 주도한 뒤 조계사에 숨자 보수세력이 분노하고, 숨은 사람이 숨겨준 집주인한테 적반하장 화를 내자 이번엔 불자들이 “배은망덕” 성을 낸다. 청와대의 성마른 노발대발에 따라 골이 난 경찰이 조계사 문을 부수기 일보 직전에 조계종의 중재로 무난히 해결됐는데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조계사가 다시는 범법자의 소도(蘇塗)가 되지 않겠다는 공식 선언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다. 밥 얻어먹고 은식기를 훔쳐간 장발장을 붙잡아온 경찰에 “내가 주었노라”고 말하는 게 종교다. 죽을 죄를 지은 범법자도 용서하고 보듬는 게 종교란 말이다. 한상균이란 사람을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가 우리 사회의 공적(公敵)은 아니지 않은가. 나름 분노로 독기가 오른 사람일 뿐일진대 법을 어기고 해를 끼쳤다고는 해도 종교의 품을 파고 든 그를 어떻게 내칠 수 있겠나. 대화와 상생으로 사회갈등을 해결하고자 ‘화쟁위원회’까지 만든 조계종이 어찌 다시는 제2의 한상균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겠나 말이다.
쏠림은 큰 만큼 잊기도 잘하는 게 우리네 속성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열광하던 게 지난해 여름인데 벌써 그가 강조한 ‘사랑의 혁명’을 다 잊었다는 게 놀랍다. 교황은 ‘관상(觀想)적 사랑’을 말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보듯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안에서 아름다움, 존귀함, 선함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1400년 전 원효대사가 주창한 ‘화쟁(和諍)’ 또한 다른 게 아니다. 화쟁이란 다양한 사상 간의 대립을 소통으로 화해시켜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을 이뤄낸다는 뜻이다. 원효는 이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마음자세를 제시한다. 남의 주장을 경청해 타당한 것은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모든 쟁론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쟁론이 결국 언어에 의한 다툼인 만큼 말로써 제대로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원효는 늘 이렇게 말했다. “모두 다 틀렸다.” “모두 다 맞았다.” 이것이 다툼이 화쟁을 거쳐 회통(會通)에 이르는 원효의 중심철학이다. 모두 다 틀렸기에 내 생각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고, 모두 다 맞았기에 다른 생각도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황이 추기경 시절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는 개신교 목사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때도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 언론에서 ‘굴욕’ 운운하며 난리가 났지만 교황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딱 그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화쟁의 의미를 다시 새겨 더 큰 통합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화를 내고 분노하느라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화쟁위원장으로 공권력을 우롱했다고 한상균과 함께 욕을 먹고 있는 도법 스님은 자기 책 『지금 당장』에 이렇게 썼다.
“지금처럼 상대방을 바꾸려고만 들면 우리의 관계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게 됩니다.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자신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도 바꿔야 할 제도가 있습니다.”
대통령에서부터 민주노총 노조원들까지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관계가 병들면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얻어낸들 곧 따라 병들 뿐이란 걸 잊지 말란 말이다.
이훈범/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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