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박승희의 시시각각] “It is 2015!”

바람아님 2015. 12. 15. 00:41

[중앙일보] 입력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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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정치국제 에디터 겸 정치부장


   여기자가 물었다. “내각을 남성과 여성 동등한 비율로 구성한 이유가 뭡니까.”

 44세 총리가 답했다.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It is 2015!)”


 캐나다에선 지금 정치가 인기다. 새 총리는 지난달 4일 실험적인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30명의 주요 장관들 중 남성과 여성이 각 15명이었다. TV 뉴스는 총리의 신선한 발상과 행보를 전하기 바쁘고, 젊은이들은 “총리는 SF소설광”이라는 뉴스를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퍼 나른다.

 한국 정치에선 볼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포털을 가진 덕분에 우린 ‘10대가 많이 본 뉴스 10개’ ‘20대가 많이 본 뉴스 10개’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10대와 20대들은 정치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재미와 감동이 없어서다-이 글을 쓰는 13일 오후는 예외다. 10대와 20대들은 안철수 탈당 얘기를 ‘많이 본 뉴스 2위’까지 올려놓았다. 감동은 없이-.

 저스틴 트뤼도. 1971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이 남자는 지난 10월 캐나다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그것도 제2야당 자유당의 당수로서. 그는 젊고 잘생겼다. 키 1m88㎝에 영화배우 같은 미모다. 배경도 좋다. 두 차례 총리(1968~79년, 80~84년)를 지낸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이다. 하지만 험한 정치 세계에서 이 정도론 반짝 인기를 얻을 뿐이다. 선거에서 젊음과 미모는 오히려 공격 대상이다.

 캐나다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트뤼도의 정치가 힘을 갖는 건 미래를 얘기하고 있어서다. 캐나다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46배지만 인구는 3600만 명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청년실업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 7월 65세 이상 인구가 15세 미만 인구를 추월했다는 통계도 발표됐다. 트뤼도의 처방은 중산층 확대, 부자 증세, 그리고 과감한 이민 정책과 난민 수용 등이다. “피부색·언어·종교 등으로 차별하지 않겠다” “다문화주의와 포용이 캐나다의 가치” “덜 필요한 이들에겐 그만 주고, 더 필요한 이들에게 더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남녀 비율 15대 15, 2명이 원주민이고 3명은 외국 출신(인도·아프가니스탄)의 파격 내각은 그 메시지를 실천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정직과 소통도 교육학을 전공한 트뤼도 정치의 힘이다. 새 정부에 로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은 공동선대위원장의 e메일이 폭로됐을 때다.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은 이걸 문제 삼는 기자의 질문을 야유로 방해했다. 하지만 트뤼도는 “기자들은 얼마든지 날카로운 질문을 할 권리가 있다”면서 오히려 지지자들을 만류했다. 새 내각을 발표하던 날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다. “중산층 문제와 기후변화 위협 등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들과 싸우려면 캐나다인들은 정부를 신뢰해야 하고, 정부는 그런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선 정치가 공해(公害)다. 정치인들이 그걸 자초하고, 유도하고 있다. 어제도 그랬다. 탈당 기자회견을 하면서 안철수 의원은 “목표”를 말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할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이룰 정치세력을 만들겠습니다.”

 비장하다. 그러나 비장하기만 하다. 정치의 목표가 어떻게 “세력의 확장을 막는” 것일 수 있을까. 이 시대 한국 정치의 문제는 갈등과 분열, 패싸움이다. 미래와 비전을 말하는 대신 미워하고 싸우기만 한다. 거기에 목소리를 하나 더 얹겠다는 것이라면 누가 감동하겠는가.

 2016년의 한국은 저성장과 새로운 먹거리의 부족으로 고전할 것이라는 게 안팎의 진단이다. 그런데 2015년을 마감하는 한국 정치는 국회 탓만 하는 대통령, 대통령만 욕하는 야당, 내 편 아니면 쫓아내겠다는 여당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내년은 총선이다. “보수는 적이 아닌, 우리의 이웃” “It is 2015!”라고 말하는 트뤼도가 우리 정치에도 등장한다면 폭풍 같은 인기를 얻을 게다.

박승희 정치국제 에디터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