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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방패연

바람아님 2015. 12. 16. 00:30
한국경제 2015-12-15

연(鳶)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딱히 찾기 힘들다. 한자의 원뜻인 솔개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솔개처럼 빙빙 돌다가 잽싸게 내리꽂는 모습과 같아 불린 것 같다. 영어에서 연을 뜻하는 카이트(kite)도 솔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 연을 처음 만든 노반(魯班)의 연 역시 솔개와 닮은 형태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날린 연도 새의 형상이었다. 김유신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면서 군사와 백성들이 불안에 떨자 불 붙인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과 함께 날려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꾸몄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내면서 난을 평정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를 발견할 때 만든 연 또한 유명하다. 프랭클린을 흉내 내 비슷한 연을 만들어 날린 사람 중 여럿은 번개에 맞아 죽기도 했다.


 


정작 한국의 연을 대표하는 것은 방패연이다. 솔개 모양과는 전혀 닮지 않은 직사각형 연이다. 표면에 갖가지 그림을 그리거나 치장을 하는 일본 연과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세계 어떤 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앙에 큰 구멍(방구멍)이 뚫려 있는 게 특징이다. 방구멍은 연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을 쉽게 해주고 센바람을 흡수해 연을 잘 뜨게 한다고 한다. 연싸움에서 요구되는 기동성에선 최적이다. 선조들은 이미 비행기 발명 이전에 방구멍을 뚫으면 훨씬 높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국내 과학자들이 방패연을 분석한 결과 초당 3~5m의 바람이 불고 연의 각도가 30~60도 사이에서 방구멍의 역할이 극대화됐다고 한다. 방패연과 더불어 연실을 빨리 감고 풀 수 있도록 한 얼레도 독창적으로 개발한 유산이다. 방패연을 날리는 묘미는 얼레를 얼마만큼 잘 조종하느냐에 달려있다.


1893년 열린 미국 시카고박람회에 출품됐던 조선 방패연 2점과 얼레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 방패연은 국내에서 찾기 힘든 19세기 실물이다. 시카고박람회는 조선에서 최초로 참가한 국제박람회였다. 고종이 방패연을 좋아해 출품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당시 박람회에 참가했던 선각자들의 마음이나 지금 한강변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 띄워올리기 좋은 겨울이 왔다. 동네 뒤 언덕에 올라 귀가 얼어붙는 줄도 모른 채 한참을 연싸움에 골몰하다 보면 멀리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곤 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