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선우정 칼럼] 우리는 왜 망했나

바람아님 2015. 12. 16. 06:43

(출처-조선일보 2015.12.16 선우정 논설위원)

올해 舊韓末을 공부했다
너무 많은 人材가 허무하게 죽었다
外勢보다 무서운 건 國力을 통째로 잡아먹은 무능한 정치였다

선우정 논설위원해방 70주년을 앞두고 작년 이맘때 세운 계획이 있다. 
해방 이전 역사, 특히 구한말 역사를 공부하면서 '당시 우리가 왜 망했는지' 정리해 보자는 것이다. 
공부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한줄기 흐름은 잡았다. 
우리에게도 국권(國權)을 지킬 기회와 열정,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 년 공부해 겨우 그 정도 알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를 둔다. 
'외세의 침탈 탓' '조상의 무능력 탓'이란 양극단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배 논설위원에게서 국권 상실 이후 조선 양명학자들의 비장한 죽음을 기록한 귀한 논문을 
얻었다. 고(故) 민영규 교수가 1987년 쓴 '강화학(江華學) 최후의 광경'이란 글이다. 
그동안 이 글이 읽고 싶었던 건 일본사(史)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은 토막 지식 때문이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열강 반열에 올린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양명학의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양명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중시하니 실천가에게 맞는 사상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양명학파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논문은 양명학자 황현(黃玹) 형제가 국권 상실 후 34년의 시차를 두고 자결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한 동지들은 '빙설(氷雪)로 갇힌 삼천리 산과 들을 뒹굴며' 만주로 떠나 
'곤궁의 극치에서 장의(葬儀)는커녕 관 살 돈도 없이' 차례차례 죽어갔다. 
스스로 안락을 버리고 사지(死地)를 택해 떠나는 최후의 광경이 소설보다 비장하다. 
저자는 '동기(動機)의 순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뜻일까. 
'일제 밑에서 살아 무엇하냐'는 뜻일까. 
황현은 유서에 '황은이 망극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저 분해서'라고 자결의 이유를 적었다.

양명학 문외한이라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허무했다. 
목숨을 바친 일본의 양명학파 역시 '동기의 순수성'을 중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기만큼 중요한 지향점을 가졌고 죽음을 통해 달성했다. 
우리 양명학파는 무엇을 위해 죽은 것일까. 그들 이전에도 이 나라엔 기꺼이 목숨을 던진 수많은 실천가가 있었다. 
그런데 두 나라 목숨 값은 왜 이렇게 다른가. 용기와 열정은 같은데 우리는 왜 망했을까. 
식견이 부족한 탓에 지식 하나를 습득하면 열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역사를 읽을수록 무조건 외세를 탓하는 주장에 흥미를 잃었다. 
강화도조약에서 국권 상실까지 우리에겐 30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역사에도 삼세번 규칙이 적용되는가. 갑신정변·갑오개혁·광무개혁은 소중한 기회였다. 
역사를 읽을수록 흥미를 잃는 주장이 또 하나 있다. 조선은 국력이 고갈돼 이미 망한 나라였다는 숙명론이다. 
당시 한국을 오래 본 서양인들은 한결같이 우수한 재능, 뜨거운 교육열, 풍부한 자원을 높이 평가했다. 
아직 강하지 못했지만 강해질 수 있는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서 황현은 왜 '인간 세상 식자(識者) 노릇하기 어렵다'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죽었을까.

정말 식자 노릇 어려웠던 시대인 듯하다. 
개화를 꿈꾸고 정변을 주도한 당대의 천재 김옥균은 피살 후 사지가 잘려 팔도에 조리돌림당했다. 
개혁을 주도한 조선 최후의 영의정 김홍집은 실각 후 군중에게 내던져져 타살됐다. 
외세의 폭거였다면 덜 허무했을 것이다. 
가슴 아팠던 건 수많은 인재가 개혁을 시도하다가 섬기던 국왕에 의해 최후를 맞는 광경이었다. 
왕은 개혁이 왕권을 제약했을 때 개혁 전체를 내쳤다. 
민족의 열정·재능도, 하늘이 준 천금 같은 기회도 절대 왕권 앞에서 30년을 몸부림치다 끝내 사라졌다. 
무능한 정치는 이렇게 무섭다.

열정과 희망이 고갈된 나라엔 황제만 남았다. 
국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제에 대해 황제는 "대신과 백성의 의향을 묻겠다"며 뒤로 피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며 황제를 비웃는다. 
"귀국은 헌법 정치도 아니며 만기(萬機) 모두를 폐하가 결정하는 소위 전제군주국 아닙니까?" 
이런 허깨비 같은 권력을 지키려고 충신과 개혁을 버렸는가.

구한말을 이야기하면 "지금은 국력이 다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국력이 모자라 망했나, 국력을 키우는 개혁을 못 해 망했나.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민족의 재능과 열정, 개혁의 기회를 통합해 나라를 끌고 가지 못한 정치 때문에 망한 건 분명해 보인다. 
100년 후 후손이 쓸 역사에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역사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만큼 교훈을 준다. 
올해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