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원유 파이프는 北의 생명줄… 완전히 잠그진 않을 것”
구자룡특파원 , 조숭호기자
동아일보 2016-01-11 03:00:00 수정 2016-01-11 03:00:00
[北 4차 핵실험 이후]對北제재 강화 동참할까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이 대북 제재의 핵심 조치인 ‘원유 공급 중단 또는 감축’ 카드를 꺼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대외무역의 90%를 의존하고, 특히 에너지 수입의 92%를 기대고 있는 핵심 국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 중국 원유 없이 북한 3개월도 못 버텨
2011년 중국 해관(세관) 통계에서 월간 대북 원유 수출량이 ‘0’으로 처음 표시되자 북한 소식통으로부터 △핵개발 중지 △6자회담 복귀 압박용으로 중국이 기름 카드를 꺼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매월 집계를 분기·연간 집계로 바꾸는 등 통계만 들쭉날쭉했을 뿐, 대북 원유 수출은 꾸준히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KOTRA가 발간한 ‘북한대외무역동향’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4년 7억4706만 달러어치의 광물성 연료와 광물유(油)를 수입했다. 이 가운데 6억9143만 달러어치가 중국에서 수입됐다. 전체 에너지 수입 대비 92.5%다. KOTRA는 “한때 세관 통계에 원유 수입량이 ‘0’으로 돼 있던 적도 있었지만 북한 내 생산시설 가동 저하, 수입처 변경 등의 정황이 없고 중국산 원유를 정제하는 봉화 화학공장이 정상 가동되는 점에 비춰 중국으로부터 예년 수준의 공급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단둥(丹東)에서 압록강 바닥을 통해 건너가는 중국 석유 파이프를 차단하는 것은 북한의 ‘생명줄(life line)’ 차단 효과가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저장시설이 취약한 북한은 중국의 지원 없이는 3개월도 못 버틸 만큼 원유 비축분에 여유가 없다”며 “북한의 대혼란을 초래하는 강력한 수단이어서 중국이 파이프를 잠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2만∼3만 t 규모의 원유를 배로 실어올 수는 있지만 연간 50만 t 규모인 중국의 공급량을 따라오기 어렵다. 중국이 국제가격보다 비싸게 기름을 제공해도 북한이 받을 수밖에 없던 것도 파이프라인을 통한 공급 안정성 때문이었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2년의 경우 북한의 중국 석유 도입 단가는 배럴당 150달러로 다른 원유 산지인 두바이유(109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94달러) 가격보다 1.5배가량 비쌌다. 북-중 사이의 친밀도에 비춰 우호가격으로 거래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시장가격보다 낮았던 중국산 기름값은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많이 뛰었다.
북한이 중국을 제외한 제3국에서 직접 원유를 들여오지 못하는 것은 보유한 선박들이 낡았고 국제 거래를 많이 하지 않는 데다 대북 제재로 외화 거래가 차단돼 있어서다. 중국은 단천상업은행, 압록강개발은행처럼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은행과는 거래를 끊었지만 조선광선은행, 조선하나은행 등과는 여전히 거래하고 있다. 여기서 위안화 결제를 할 수 있고 북한의 희귀 광물 등 북-중 간 수입·수출품을 상계(相計)하는 ‘물물교환’도 가능하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 중국의 제재 카드는?
베이징(北京)의 한 대북 소식통은 “생명줄 절단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은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때가 아니라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이탈해 미국으로 지나치게 기울 때 쓸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도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모든 원조를 중단하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북한은 꽃놀이패
중국은 통일한국 겁낸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의 철수 때 일이다. 한·미 정보당국이 TV 영상에서 가장 눈여겨본 대목은 베이징 호텔 숙소까지 찾아가 현장에서 귀국을 만류하던 인물이었다. 바로 중국 공산당 전 대외연락부장 왕자루이와 현 대외연락부장 쑹타오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하 경칭 생략)과 리커창이 외교를 나눠 맡는다. 국가 운명에 관계된 대미·대러·대북한 외교는 시진핑이 직접 관리한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내각(총리-외교부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에게 보고한다. 따라서 모란봉악단의 귀국 만류는 시진핑의 육성(肉聲)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현지 판단을 믿는다”며 철수시켰다. 그리고 사흘 뒤(12월 15일) 핵실험을 지시했고, 지난 3일 최종 재가했다. 시진핑도 못 말리는 김정은이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온통 신경은 단둥~신의주 지하의 ‘조·중우호송유관(送油管)’에 쏠리고 있다. 북한 석유 수요의 90%가 지나는 생명줄이다. 이 송유관은 희한하게 북한 핵실험 때마다 ‘기술적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 ‘내부 수리 중’ 팻말을 걸고 두어 달간 원유 찌꺼기가 굳지 않을 정도로 파이프를 걸어 잠궜다. 북한은 그때마다 군소리 없이 6자회담에 끌려 나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송유관에 기술적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시진핑이 슬그머니 파이프를 다시 틀 것이란 사실이다. 왜일까?
중국의 최고 목표는 공산당 일당독재 유지다. 중국은 14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모두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한참 아래다. 유독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한반도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면 대량 난민이 유입된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우선 북한의 붕괴로 미군의 존재가 압록강까지 어른거리는 것 자체가 중국엔 악몽이다. 또 통일한국은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주의도 잘 작동하는 편이다. 중국은 이런 새 이웃의 전염력을 겁낼 수밖에 없다. 동북3성엔 200만 명의 조선족도 살고 있다.
김정은은 영리하다. 자신의 지정학적 가치를 안다. 중국이 자신을 함부로 못하리라 믿고 마구 핵·미사일을 쏴댄다. 내심 중국도 북핵을 꽃놀이패로 즐기는 분위기다. “북한을 혼내 달라”고 매달릴수록 중국의 국제적 몸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을 한국이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박근혜가 아무리 ‘천안문 망루’ 외교를 펼쳐도 안 되는 일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정치지도자들에게 북핵은 정치·외교적 투자가치를 전혀 못 느끼는 사안이다. 잠시 지나갈 잠재적 위협일 뿐 유권자의 표가 안 된다. 미국이 이번에도 “수소폭탄은 아니다”며 애써 깎아내리는 이유다.
김정은의 핵 장난은 이어질 것이다. “핵·미사일을 발전시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라”는 게 김정일의 10·8 유훈이다. 하지만 북한에도 ‘노동당보다 장마당이 더 세다”는 말이 있다. 원유·쌀·금융이 막히면 북한은 생존하기 어렵다. 여전히 북한의 운명은 미·중이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려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나는 북한 핵미사일이 미 본토 상공을 지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이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에 핵 물질을 넘기는 경우다. 미 유권자들이 피부로 위기를 느껴야 미 정치권이 목숨 걸고 움직인다.
의외로 중요한 변수는 국제여론이다. 중국은 1989년 고르바초프를 따라온 외신기자들에 의해 끔찍한 천안문 유혈진압 장면이 공개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심각한 경제제재 속에서 중국은 한국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았다. 그렇게 이뤄진 게 92년 한·중 수교였다. 올해 중국 경제 상황이 나쁘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외환·주식시장은 쑥대밭이다. 만약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북핵 비난여론이 국제적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중국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한·미의 요구대로 대북 송유관을 완전히 걸어 잠글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시진핑은 김정은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안타깝고 분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무리다. 북한 1~3차 핵실험 때도 항상 그랬다.
이철호 논설실장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이 대북 제재의 핵심 조치인 ‘원유 공급 중단 또는 감축’ 카드를 꺼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대외무역의 90%를 의존하고, 특히 에너지 수입의 92%를 기대고 있는 핵심 국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 중국 원유 없이 북한 3개월도 못 버텨
2011년 중국 해관(세관) 통계에서 월간 대북 원유 수출량이 ‘0’으로 처음 표시되자 북한 소식통으로부터 △핵개발 중지 △6자회담 복귀 압박용으로 중국이 기름 카드를 꺼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매월 집계를 분기·연간 집계로 바꾸는 등 통계만 들쭉날쭉했을 뿐, 대북 원유 수출은 꾸준히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KOTRA가 발간한 ‘북한대외무역동향’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4년 7억4706만 달러어치의 광물성 연료와 광물유(油)를 수입했다. 이 가운데 6억9143만 달러어치가 중국에서 수입됐다. 전체 에너지 수입 대비 92.5%다. KOTRA는 “한때 세관 통계에 원유 수입량이 ‘0’으로 돼 있던 적도 있었지만 북한 내 생산시설 가동 저하, 수입처 변경 등의 정황이 없고 중국산 원유를 정제하는 봉화 화학공장이 정상 가동되는 점에 비춰 중국으로부터 예년 수준의 공급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단둥(丹東)에서 압록강 바닥을 통해 건너가는 중국 석유 파이프를 차단하는 것은 북한의 ‘생명줄(life line)’ 차단 효과가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저장시설이 취약한 북한은 중국의 지원 없이는 3개월도 못 버틸 만큼 원유 비축분에 여유가 없다”며 “북한의 대혼란을 초래하는 강력한 수단이어서 중국이 파이프를 잠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2만∼3만 t 규모의 원유를 배로 실어올 수는 있지만 연간 50만 t 규모인 중국의 공급량을 따라오기 어렵다. 중국이 국제가격보다 비싸게 기름을 제공해도 북한이 받을 수밖에 없던 것도 파이프라인을 통한 공급 안정성 때문이었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2년의 경우 북한의 중국 석유 도입 단가는 배럴당 150달러로 다른 원유 산지인 두바이유(109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94달러) 가격보다 1.5배가량 비쌌다. 북-중 사이의 친밀도에 비춰 우호가격으로 거래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시장가격보다 낮았던 중국산 기름값은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많이 뛰었다.
북한이 중국을 제외한 제3국에서 직접 원유를 들여오지 못하는 것은 보유한 선박들이 낡았고 국제 거래를 많이 하지 않는 데다 대북 제재로 외화 거래가 차단돼 있어서다. 중국은 단천상업은행, 압록강개발은행처럼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은행과는 거래를 끊었지만 조선광선은행, 조선하나은행 등과는 여전히 거래하고 있다. 여기서 위안화 결제를 할 수 있고 북한의 희귀 광물 등 북-중 간 수입·수출품을 상계(相計)하는 ‘물물교환’도 가능하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 중국의 제재 카드는?
베이징(北京)의 한 대북 소식통은 “생명줄 절단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은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때가 아니라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이탈해 미국으로 지나치게 기울 때 쓸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도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모든 원조를 중단하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원유 공급 중단이 아닌 일부 감축 △북한산 무연탄 수입 차단 △임가공 무역과 건설자재 수출 중단 △중국 관광객 북한 관광 금지 등 다양한 수단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10일 북-중 접경도시인 지린(吉林) 성 투먼(圖們)과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에서는 단체 북한 관광이 대부분 중단됐다. 투먼과 북한 남양을 잇는 투먼대교의 다리 관광도 ‘보수 공사’를 이유로 잠시 중단됐다.
유엔 차원의 신규 제재 방법으로 거론되는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개인도 제재)’, 대북 금융제재의 성패도 중국이 쥐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거래 대상의 대부분이 중국 기업이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국의 결심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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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시진핑도 못 건드리는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16.01.11 00:48
"중국에 북한은 꽃놀이패
중국은 통일한국 겁낸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하 경칭 생략)과 리커창이 외교를 나눠 맡는다. 국가 운명에 관계된 대미·대러·대북한 외교는 시진핑이 직접 관리한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내각(총리-외교부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에게 보고한다. 따라서 모란봉악단의 귀국 만류는 시진핑의 육성(肉聲)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현지 판단을 믿는다”며 철수시켰다. 그리고 사흘 뒤(12월 15일) 핵실험을 지시했고, 지난 3일 최종 재가했다. 시진핑도 못 말리는 김정은이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온통 신경은 단둥~신의주 지하의 ‘조·중우호송유관(送油管)’에 쏠리고 있다. 북한 석유 수요의 90%가 지나는 생명줄이다. 이 송유관은 희한하게 북한 핵실험 때마다 ‘기술적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 ‘내부 수리 중’ 팻말을 걸고 두어 달간 원유 찌꺼기가 굳지 않을 정도로 파이프를 걸어 잠궜다. 북한은 그때마다 군소리 없이 6자회담에 끌려 나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송유관에 기술적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시진핑이 슬그머니 파이프를 다시 틀 것이란 사실이다. 왜일까?
중국의 최고 목표는 공산당 일당독재 유지다. 중국은 14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모두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한참 아래다. 유독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한반도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면 대량 난민이 유입된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우선 북한의 붕괴로 미군의 존재가 압록강까지 어른거리는 것 자체가 중국엔 악몽이다. 또 통일한국은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주의도 잘 작동하는 편이다. 중국은 이런 새 이웃의 전염력을 겁낼 수밖에 없다. 동북3성엔 200만 명의 조선족도 살고 있다.
김정은은 영리하다. 자신의 지정학적 가치를 안다. 중국이 자신을 함부로 못하리라 믿고 마구 핵·미사일을 쏴댄다. 내심 중국도 북핵을 꽃놀이패로 즐기는 분위기다. “북한을 혼내 달라”고 매달릴수록 중국의 국제적 몸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을 한국이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박근혜가 아무리 ‘천안문 망루’ 외교를 펼쳐도 안 되는 일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정치지도자들에게 북핵은 정치·외교적 투자가치를 전혀 못 느끼는 사안이다. 잠시 지나갈 잠재적 위협일 뿐 유권자의 표가 안 된다. 미국이 이번에도 “수소폭탄은 아니다”며 애써 깎아내리는 이유다.
김정은의 핵 장난은 이어질 것이다. “핵·미사일을 발전시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라”는 게 김정일의 10·8 유훈이다. 하지만 북한에도 ‘노동당보다 장마당이 더 세다”는 말이 있다. 원유·쌀·금융이 막히면 북한은 생존하기 어렵다. 여전히 북한의 운명은 미·중이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려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나는 북한 핵미사일이 미 본토 상공을 지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이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에 핵 물질을 넘기는 경우다. 미 유권자들이 피부로 위기를 느껴야 미 정치권이 목숨 걸고 움직인다.
의외로 중요한 변수는 국제여론이다. 중국은 1989년 고르바초프를 따라온 외신기자들에 의해 끔찍한 천안문 유혈진압 장면이 공개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심각한 경제제재 속에서 중국은 한국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았다. 그렇게 이뤄진 게 92년 한·중 수교였다. 올해 중국 경제 상황이 나쁘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외환·주식시장은 쑥대밭이다. 만약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북핵 비난여론이 국제적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중국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한·미의 요구대로 대북 송유관을 완전히 걸어 잠글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시진핑은 김정은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안타깝고 분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무리다. 북한 1~3차 핵실험 때도 항상 그랬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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