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이런 선택에는 경제적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핵에 대한 협력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상황이 벌어지니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적 의미에서는 ‘불통(不通)’ 수준이다. 박근혜-시진핑 정상 간에는 전화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4차 핵실험 다음날인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한·중 국방장관 간의 핫라인이 개설됐지만 중국 측은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과는 6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는 8일 통화했다. 외교장관의 경우, 미국·일본·영국·프랑스 외교장관과는 핵실험 당일인 6일 통화했으나, 중국 외교부장과의 통화는 2차례 연기한 끝에 8일 겨우 이뤄졌다.
한·중 외교장관의 통화 내용도 실망스럽다. 왕이 부장은 비핵화·평화·대화라는 중국의 한반도 3대 원칙을 강조하면서, ‘결일불가(缺一不可·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기존 입장 그대로다. 결국 박 정부의 중국 중시는 짝사랑에 불과했던 셈이다. 대중(對中) 외교의 실패가 아닌지 냉정하게 되짚어볼 때다. 그래야 이제라도 헛다리를 짚지 않는다. 물론 외교를 내 편 아니면 네 편 식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외교는 지도자 간의 개인적 친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익’과 ‘강제’에 의해 움직인다는 원리를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더 냉정한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 국가 간에도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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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박 대통령 전화' 못받을까
한국일보 2016-1-11北 자극해 사태 악순환 우려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인민해방군 제13집단군을 방문, 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망
북한의 4차 핵 실험 후 한중 두 나라가 협의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 통화가 과연 성사될지에 동북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한중 정상 통화가 이뤄질 경우 북핵에 대한 단호한 한중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사상 최고라는 한중 관계 속에 중대 현안이 발생했는데도 닷새가 지나도록 양국 정상이 직접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국의 고민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외교가의 설명이다.
중국이 양국 정상 통화란 한국의 요구를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먼저 북한의 핵 실험 후 한반도 정세가 소용돌이치며 한미일 동맹이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일본이 북핵을 구실로 실제론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 증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정상이 통화를 할 경우 마치 한미일 삼각 동맹에 중국도 가세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
둘째 미국의 전략 자산이나 핵무기가 다시 한반도에 배치될 수 있다는 점도 중국의 우려다. 1990년대 주한미군 핵 무기를 철수시킨 미국이 만약 한국의 요청에 따라 핵무기를 다시 배치하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란 중국의 외교적 목표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핵 무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전략 폭격기나 핵 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등이 한반도 주변에 상시 출몰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셋째 무엇보다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사드ㆍTHAAD)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이 더 커졌다. 중국은 그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했다. 2,000㎞ 밖의 탄도 미사일까지 탐지할 수 있는 사드에 대해서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실험으로 중국이 그 동안 사드에 반대해 온 명분은 상당히 약해졌다. 중국으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넷째 중국은 대북 제재 강화가 북중 관계를 더 소원하게 하면서 사태의 악순환만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미일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제재는 이전보다 제제의 범위와 정도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중국은 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제멋대로인 북한은 미사일(위성) 발사 추진 등 더 과격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고 동북아 정세는 더욱 급박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너무 나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4차 핵 실험에 당초 격분했던 중국이 이후 각국의 냉정을 호소하며 “지금의 목표는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억제하는 게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선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가 한미일 대 북한의 대결 구도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6자 회담을 열어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통화를 하더라도 시 주석이 내 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고민이 깊다는 것은 알지만 중국도 북핵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전화 통화를 할 경우 북한 핵 실험 관련 첫 한중 정상 통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차 핵 실험 당시엔 한중 정상 통화가 성사되지 못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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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차갑게 끊겨 있는 한·중 핫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6.01.12 01:10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4시.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오전 11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장관실에서 중국 베이징의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장관)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중 국방장관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개통됐다고 했다.
국방부는 “한·중 수교 23주년이 되는 금년도 마지막 날에 직통전화 개통으로 그 대미를 장식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는 한 장관의 발언과, “핫라인 개통은 기념비적인 것”이라는 창 부장의 발언도 공개했다. 특히 한 장관은 “양국 국방 당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으로 이룬 의미 있는 성과”라고도 했다.
하지만 1월 11일 중국의 창 부장이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했다는 한·중 핫라인은 말 그대로 먹통이다. 끊긴 건 아니다. 다만 한국이 전화기를 들어도 중국 측에서 응답이 없으니 먹통이란 얘기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6일)한 지 닷새가 됐지만 한·중 국방장관의 핫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국방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민구) 장관이 지난번(7일)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중국과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실무 협의 중’이라고 했다. 현재 중국 국방부는 다른 어떤 나라와도 통화를,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일단 요청은 한 상태이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12월 31일 들뜬 모습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한·중 핫라인의 의미와 성과를 구구절절 설명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국방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핫라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형성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공통 인식을 토대로,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고 고위급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기제로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적었다. 한반도의 위기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땐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설명도 했다.
핫라인은 1963년 8월 미국 백악관과 러시아의 크렘린궁 사이에 사고나 오해로 인한 우발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개통한 게 기원이다. 그야말로 긴급 비상용 전화다. 하지만 한·중 간 핫라인은 한반도에 ‘뜨거운 상황’이 발생한 2016년 1월 잠자고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 안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핫라인은 중국의 외면으로 차갑게 식어 있다. 중국을 동맹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방으로 분류할 만큼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는 지금까지 유별났다. 문제는 그 유별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상황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 한심한 건 이 국면에 국방부 고위 당국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다. “BH(Blue House의 약어, 청와대)에서 풀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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