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6.01.23 00:10
“성매매는 착취이므로 성매매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오만하다. 성매매자를 지적,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는 우월감이 배어 있다. 적지 않은 여성이 성매매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현실 속에서, 단죄의 법적·도덕적 근거는 보다 성찰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제 모습은 추하답니다. 왼쪽 눈알은 없고, 다리는 절뚝절뚝, 목발이 없으면 아무데도 못 가는 몸. 괜찮다고요? 글쎄요, 사실 예전에는 좀 예쁘단 얘기도 들었어요. 네, 물론 외모가 다는 아니겠죠. 중요한 건 마음이죠. 근데 너무 흔해 빠진 말이네요. 비꼬는 거냐고요? 아니에요. 높으신 국회의원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할 리 있겠어요? 의원님을 존경해요. 진심이에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으시고, 얼마 전에는 성매매 처벌을 강화하는 새 법안을 발의하셨다고 들었어요. 성매매 처벌법이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기까지 한데, 정말 주관이 뚜렷하신 거 같아요.
근데 전 바로 그 ‘성매매녀’였답니다. 아,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실 필욘 없어요. 살면서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핑계 없는 무덤도 없고요. 제 경우도 굳이 변명하자면, 힘들었어요. 먹고 사는 일이 너무나도. 샤넬 백 사려고 성매매 하는 여자도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정말 절박했다고, 이 일 말고는 도저히 가족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었다고 한다면 좀 구차하게 들릴까요?
볼품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자랐어요. 물도 자주 끊기는 주제에 여름에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물난리를 겪는 황당한 곳이었죠. 가난에 지겹도록 익숙했어요. 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맛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상황은 더 나빠졌어요. 아빠는 목뼈를 다쳐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죠. 남자친구는 아기만 남기고 떠나버렸고요. 정신 차려보니 아빠와 아기를 제가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요. 암담했어요. 아빠가 죽을 힘을 다해 절 대학까지 보내셨는데,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싶었어요. 아, 전 이래 봬도 대학을 나왔답니다. 부끄럽네요. 이런 일하면서 학벌을 내세우는 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저 생각 없이 사치스런 생활에 홀려서 이 일에 뛰어든 여자는 아니라는 인상을 자꾸만 드리고 싶어서였나 봐요.
생계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던 전 결국 선택을 했어요. 제가 들어간 곳은, 잠자리를 원하는 남자들에게 여자를 알선해주는 업체였어요. 어차피 내 한 몸 던지기로 마음먹은 거, 남자하고 자는 것만은 안 된다고 선을 그을 필요가 있어? 누굴 위해서? 누가 알아주는데? 몸을 지킬 대상도 이유도 없었던걸요. 남들은 더러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도둑질한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벌었든, 돈에는 색깔이 없잖아요. 세상에 저 같은 여자는 늘 있는 법 아니겠어요? 그게 하필 저라고 해서 뭐가 대수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몇 년을 일했죠.
우리가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암적인 존재라고?
모든 일은 길어지면 나쁜 끝이 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손가락질받는 일은 더 그런 법이겠죠? 의원님도 신문 기사에서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성매매 함정단속 중에 모텔 4층에서 뛰어내렸다던 여자 말이에요. 그게 바로 저랍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알몸으로 네 명의 형사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땐 정말 죽고 싶었거든요. 우리가 돈을 받고 남자와 자준다고 해도, 여자잖아요. 벌거벗고 있는데 함부로 그렇게 남자들이 짓밟고 들어와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살인자도 인권이 있다면서 신문에선 얼굴을 가려주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뭘 얼마나 나쁜 짓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해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우리한텐? 전 무엇에 홀린 듯 창가로 걸어갔어요. 그리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어요….
그때 죽었어야 했어요.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침대였고, 한쪽 눈을 잃어 세상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몸도 잘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가족의 생계가 엉망이 된 건 당연했죠. 그런데 제게 마음의 상처를 안긴 건 따로 있었어요. 바로 그럴 듯하고 어려운 말로 높은 데서 우리를 분석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말 못할 수치감을 느꼈답니다. 제가 살았던 흔적은 모조리 부정되었어요. 전 없어져야 할 인간이자 근절의 대상에 불과했어요. 제가 남자들한테 준 위안은 아무것도 아닌가요? 부끄러움일 뿐이에요? 무섭고 딱딱한 말들. 성매매여성, 구조적 착취, 성풍속 보호, 엄중한 단속, 어둠, 갱생, 자활…. 그런 말들 안에 제 인생은 없었어요. 성매매 여성이 불쌍한 존재니 사회의 피해자니 동정하는 척했지만 결국은 그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 암적인 존재라는 이야기에 불과하더라고요.
형사들은 그때 제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당장 미웠어요. 사람을 벌거벗겨놓고 어떻게 그렇게 토끼몰이를 하듯 궁지에 몰았는지. 제 사건을 두고 경찰의 무리한 함정단속을 맹비난한 분 중에 의원님이 계시더군요. 근데 알고 보니 그 무렵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라며 주문했던 대표적인 분 또 한 의원님이시더라고요. 경찰청에 항의 방문까지 하셨다고요. 그러고 보면 형사들도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의원님은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저와 우리 가족의 생계를 파탄 내고 만 거예요. 전 생각 끝에 의원님께 편지를 드리기로 했어요. 아니, 무슨 저주를 퍼부을 생각은 전혀 아니에요. 그저 맘 가는 대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 같은 인생과는 100만 광년쯤 떨어져 사실 게 분명한 의원님한테요. 그런데, 글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이 솟구칠까요. 아마도 지옥에 있는 제 마음 탓이겠지요.
의원님한테 여쭙고 싶어요. 성생활이란 게 행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지속적인 성생활을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시나요? 그런 운 좋은 사람들만 범죄로 단속될 걱정 없이 성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건가요? ‘선량한 성풍속의 보호’라고 하는데, 그 정체가 뭐죠? 뭔가 좋은 명분인 것 같긴 한데, 저처럼 성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만큼 절박한 여자들한테도 그런 대단한 명분을 요구해야 하나요? 아니면 성욕에 시달리면서도 ‘선량한 성풍속’의 유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을 것을 법이 남자들에게 요구한단 말이에요? 적어도 돈을 받고 성을 팔 필요가 없을 만큼은 먹고 사시는 분들한테서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네요. 과연 사회의 성풍속 유지를 위해 성욕을 참을 대단한 남자가 몇 명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부처라도 제어하기 힘든 것이 성욕이다
‘성매매는 착취이므로 성매매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좀 이상해요. 난 성인이거든요? 어쩌다 보니 공부도 할 만큼은 했어요. 우리는 하는 일이 좀 그럴 뿐, 성매매를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지성이나 도덕이 못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넌 착취당하고 있어, 라고 하는데, 그런지 아닌지를 깨닫지 못할 만큼 우리가 바보 같나요? 은근히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처지조차 똑바로 보지 못하는 얼간이들이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린 듯해요. 의원님도 성인이고, 저도 성인이에요. 물론 의원님이야 저와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하시겠지만, 그래도 일반론적으로야 이성과 지성, 인격 같은 게 원칙적으로 동등하다고 봐요. 왜 의원님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거죠? 좀 거만하신 것 같고, 제 기분이 스멀스멀 나빠져요. 우린 보호받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가 싫다고 하잖아요. 보호자 행세는 그만둬 주셨으면 좋겠어요.
의원님이 과연 도덕적으로 우리보다 우월한 걸까요? 단지 돈을 주고받으며 성을 팔거나 살 필요가 없는 처지에 계실뿐인 건 아닌가요? 성매매, 맞아요. 떳떳하지 못해요. 그걸 가차 없이 심판하는 그 말씀은 구구절절 훌륭할 수밖에요. 하지만 성욕은 정말 강렬한 거예요. 그런 게 인간의 몸에 한 개 더 있었으면 석가모니도 성불하지 못하셨을 거라고 할 만큼 뿌리 깊은 본능이에요. 싹을 자를 순 없는 걸요. 거기에 졌다고, 그렇게 크게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감히 다시 말하는데, 의원님이 성매매를 하는 당사자보다 도덕적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요, 의원님은 단지 욕망이 그 사람들과 다를 뿐이거나 아니면 그저 쇠약한 것일 뿐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의원님은 힘을 가졌죠. 도덕이 아니라 힘 말이에요. 자신들이 버렸거나 관심 없는 행위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윤리의 이름으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행동을 문명국가에서는 폭력이라고 부르지요. 혹은 자유의 적이라고 하기도 해요. 자신은 이제 싫증나버린 죄악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이겠죠. 그런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결국은 얄팍한 오만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내려다보며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편견을 휘두르며 우월감을 만끽하고, 자신이 저지를 의사를 상실한 ‘죄’에 빠져 있다고 하여 상대를 범죄자로까지 몰아붙여도 괜찮은 건지요. 이런, 너무 나가버렸네요. 죄송해요, 의원님.
따지고 보면 성욕은 배고픔이나 다를 거 없어요. 다만 동굴 시대부터 왠지 이 행위만은 밥 먹는 일보다 조금 더 은밀하게 해왔다는 것일 뿐.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죠.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은 다양할 거예요. 대개는 돈이죠. 돈으로 밥을 사먹고, 서비스를 사요. 우린 그걸 다 인정하구요. 하지만 성에 관한 한 유독 돈이 끼어들면 ‘선량한 성풍속’을 해친다? 좀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런 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언짢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걸 왜 처벌해야 하는지, 절 좀 설득시켜 주세요.
인물 좋고 돈 많고 그런 잘난 남자들은 얼마든지 길이 있나 보더라고요. 하지만 다 그렇진 않잖아요. 연애에 재능 없는 모태솔로들, 못난이, 장애인, 홀아비, 혼자된 노인들은 어떡해야 하죠? 몇 푼의 돈이 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사람들한테, ‘성풍속’을 위해 참으라고 법은 말하는 건가요? 그 사람들은 이제 평생 섹스를 하지 말고 살아야 하나요?
아, 남자들의 성욕은 알 바 아니라고요? 우리 같은 성매매 여성들을 위하고 싶으시다고요? 성매매의 본질은 착취라고요? 글쎄요, 그건 비유나 상징일 순 있어도 실제는 될 수 없지 않을까요. 착취는 감금, 갈취 같은 게 결부된 거 아니에요? 성매매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는 거래를 원하는 대등한 주체가 있을 뿐이에요. 폭력과 착취가 있다면 당연히 그 이유로 처벌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성매매 자체가 폭력과 착취를 필연적으로 낳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성매매와는 완전히 별개의, 다른 차원의 범죄예요.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같은 건 아니에요. ‘본질과 현상의 차이’라고 하는 어려운 말도 있던데. 생길 수 있는 부산물 때문에 행위를 억압하는 건 주객전도라고 하죠.
돈을 매개한 것만 선량한 성풍속에 반한다?
‘성매매여성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라고요. 그런 건가요? 하지만 제가 괜찮다는데도요? 제 자신의 의지로 하는 데도요? 당사자가 동의해서 했는데 누가 누굴 모욕한 거예요? 혹시 그걸 보는 의원님이 모욕당한 느낌을 받은 것뿐 아니에요? 사람 잡네요. 전 생계가 걸려 있다고요. 그런 관념적인 이름 붙이기가 우리의 생계를 떨궈낼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요? 우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우리의 관계를 규정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신이세요?
성매매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라고요? 구조적? 그 애매한 말의 실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폭력이 뭔지는 알겠네요. 누굴 때리거나 억지로 뭘 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상해요. 사무실 언니, 나를 돈 주고 산 남자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때리지도 않았고요. 내게 뭘 하도록, 혹은 못하도록 강요한 사람은 바로 의원님 같은 분들하고 경찰이었어요. 내게 정말 폭력을 가한 사람이 과연 누구죠? 동정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누구인 거죠? 제겐 실제적 폭력이 구조적 폭력보다 중요하고, 그 구조적 폭력마저 다른 관점으로는 의원님 쪽에서 행사하신 걸로 생각되는데, 지나친가요?
성을 두고 돈 거래는 안 된다고요? 어떻게 사랑 없이 섹스를 하냐고요? 하하하. 여기서 좀 웃어도 되죠? 의원님께 거꾸로 물어보고 싶네요. 그럼 요즘 사랑으로 섹스하는 사람은 몇 명쯤 있나요?
그래도 사회엔 건전한 성풍속이란 게 있지 않냐고요? 성풍속이라, 근데 전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애정을 갖고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당연히 선량한 성풍속에 맞겠죠. 그럼 그 밖의 경우는요? 호기심이나 순간적인 욕구로, 혹은 그저 술에 취해서 이루어지는 건요? 매일 상대를 바꾸어가며 자는 불나비들은? 이건 다 선량한 성풍속에 맞나요? 아무튼 이 사람들은 처벌대상이 아니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 사는 모습일 뿐 성풍속이니 뭐니 하는 거에 어긋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성생활에도 윤리의 칼을 들이대겠다는 엄숙한 도덕 전사들한테 이건 왜 괜찮은지 그 기준의 합리성을 묻는 거예요.
성매매 단속한다고 다른 나라보다 성풍속 건전하나?
돈을 매개로 한 것만은 선량한 성풍속에 반한다? 왜 그런 거예요? 죄송하지만, 성풍속의 보호란 게 혹시 그저 불쾌감인 건 아니에요? 의원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불쾌감을 표출하기 위해 그런 실체가 애매한 말을 방패막이로 갖다 붙이신 건 아닌가요? 이를 악물고 욕구를 참다가 실패하고, 다른 해결방법은 없고, 그래서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건 성풍속에 위반된다고 체포되고. 무슨 놈의 성풍속이 그래요? 이거야 사람 죽이는 풍속이잖아요. 그리고, 성풍속도 풍속인데, 풍속을 법으로 강요하나요?
제가 만난 남자들, 그저 보통사람이었어요. 모텔 방 잡고 여자 부르는 남자라고 해서 다 변태거나 성범죄자 같은 사람이진 않더라고요. 직업도 다양했어요. 회사원, 자영업자 아저씨, 군인, 중국동포, 막노동자까지요. 다 똑같았어요. 누구도 괴물은 아니었어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특별한 순간에 불과했던 거죠. 그런 보통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범죄는 살인, 강간, 사기, 폭력, 착취 그런 것들이잖아요. 자신만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하러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하고,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을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방법으로 실현한 사람들하고 같이 취급하는 건가요?
성인끼리 자유의사로 성을 거래한 행위는 그저 사회적 평가에 맡기면 그만 아닌가요? 어떤 행동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이걸 ‘비범죄화’라고 하더군요) 그 행동을 권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것이 어떤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과 그것이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엄밀히 구분돼야 하지 않을까요? 저나 그 남자들, 부끄럽지 않은 거 아니에요. 어차피 세상 눈치 보고 있어요. 다만 우릴 범죄자라고 단죄하려 드니까 반발심이 이는 걸요.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성풍속이 건전한가요? 모르겠어요. 낮과 밤의 얼굴이 이만큼 다른 도시가 전 세계적으로 또 있는지. 그나마 단속과 처벌이 없었다면 더 불건전하게 변했을까요? 그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겠다는 정도겠네요. 그렇다면 처벌해야 할 실제적인 이유도 없는 거 아니에요?
정말로요, 조금 더 양보해서, 돈이 개입되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전한 성풍속의 유지라는 것에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왜 이것을 굳이 형벌로 조성하고 강제해야 하는 거죠? 캠페인이나 의식개혁을 통해 줄여나가는 쪽이 더 효과적이고 적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법은 가장 손쉽지만 후유증이 가장 심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적지 않은 여자들이 성을 찾는 남자들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이건 저주나 주술이 아니라 현실이죠. 그 여자들 전부가 그 돈으로 명품 백을 사는 건 아니에요. 저 같은 여자애는 물론, 의탁할 데 없는 할머니도 있어요. 음습한 지하경제의 한 축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종의 부의 재분배죠.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여기서 가장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세금 징수와 달리, 기꺼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자산의 분배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바람직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걸 대체할 복지 제도를 나라가 나서서 마련할 자신도 없으면서 대체 왜 막는 거죠? 그 탓에 힘들어지는 우리의 아우성은 혹시 안 들리시나요?
의원님은 스웨덴처럼 여자는 놔두고 성구매자인 남성만을 처벌하자는 주장도 하셨던데요. 의아해요. 우리를 봐주는 것 같아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근원적인 형평성, 평등에 어긋나잖아요. 구매자를 처벌해서 현상을 근절하자는 모양인데, 인문의 근본을 뒤흔들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해요? 차라리 쌍벌주의라면 그 입장에 반대하지만 이해는 가요. 그런데 한쪽만 쏙 뽑아내 범죄로 만든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긴다, 그래서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매수자를 처벌해야 한다. 이런 논리 같은데, 전 아무리 들어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 같거든요.
반대로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다고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니까요. 성매매에서만은 수요자가 먼저라는 건 근거 없는 편의적 독단으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상식적인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변칙이라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매수자 남성들이 절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이유로 근원적인 룰조차 위반해가면서 과도하게 핍박하는 건 아닌지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험로로 가도 괜찮은 건지요. 혹 어떤 이데올로기적 필터로 본질과 원칙이 왜곡된 건 아닌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스웨덴을 모범으로 삼았는가?
변두리 역사. 주역이 못된 변방에서의 초라한 푸닥거리. 그런데 왜 자꾸 실수를 반복하는 거죠? 왜 늘 극단이 힘을 얻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자국민의 3분의 1을 도살한 캄보디아의 악마 폴 포트조차 옹호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미국 탓이라고. 세상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배에 태워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추방시키려고 했지만 영국이 해로를 막자 가스실에 모아 아예 학살해버렸죠. 그럼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영국 탓인 거예요? 좀 그러지들 말았으면 해요. 나쁜 건 나쁜거고, 틀린 건 틀린 거예요. 좌든 우든, 다른 이데올로기든.
그리고, 뚱딴지같이 왜 스웨덴이죠? 우리가 언제부터 스웨덴을 모범으로 삼았다고요? 스웨덴은 성매매 대처에 관해 그렇게 첨단인가요? 그에 못지않게 세계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 얼마든지 있고, 지금껏 우리는 그 나라들을 참고해왔는데. 독일·네덜란드·스위스·캐나다 같은 나라는 성매매가 합법이고, 프랑스·벨기에·덴마크·이탈리아는 개인의 성매매가 허용된대요. 미국 대부분의 주와 중국, 태국, 필리핀같은 나라는 처벌을 하는데 쌍방처벌이에요. 남자만 처벌하는 나라는 스웨덴뿐인 모양이더라고요.
우리가 독일법을 가져온 걸로 아는데, 왜 이것만 과감하게 스웨덴 거를 참고하려는 거죠? 성을 매수하는 남자들에게 반감을 갖는 의원님 같은 분들이 선진국의 사례를 뒤져 그중에서 입맛에 맞는 모델을 찾아낸 거라고 보이는데, 아닌가요? 하긴 스웨덴 혼자서 특이한 제도를 갖고 있으니 눈길이 갈 법도 해요. 모두가 강연을 듣고 있는데 한두 명이 나가면 그 사람들이 외려 신경 쓰이잖아요? 강연이 별론가? 나도 나가야 할까? 하지만 대다수는 그래도 아직 앉아서 강연을 듣고 있단 걸 잊으면 안 되죠.
의원님은 온갖 좋은 말을 잔뜩 하시지만, 결국 제가 하는 일이 더럽단 거잖아요. 그래서 당장 그만 두고 딴 일 알아보란 거잖아요. 대체 제가 할 수 있는 무슨 일이 있는데요? 어떤 일을 알아봐주실 건데요? 식당? 청소부? 물론 정말 떳떳한 일이고 좋죠. 묵묵히 궂은 일 하시는 그분들을 존경해요. 하지만 수입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제가 배고픈 건 그렇다 치고, 제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돈 되고 쉬운 일만 찾는다고 욕하실 수도 있겠네요. 아, 그럼 의원님이 청소일 하실래요? 혹시 싫으신가요? 그럼 전 왜 해야 되죠?
이런, 죄송해요. 너무 넋두리가 심해져버렸네요. 전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 제가 겪은 불행한 사고가 꼭 일어났어야 할 일일까. 생각할수록 정말 알 수 없어졌거든요. 딱히 피해자가 없어 보이는데 굳이 범죄로 만들어야 할 이유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가 원치 않는 보호를 왜 우리한테 베풀겠다고 하는지, 혹시 의원님 같이 말과 힘을 독점한 분들이 그저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유는 아닌지, 성을 사고 팔 필요가 없는 행복한 사람들의 폭력은 아닌지, 그런 것들이 말이에요.(글 중 ‘의원님’은 특정인을 모델로 하지 않았습니다)
도진기 - 서울대 법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2010년 <선택>으로 추리작가협회 신인상, 2013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문광부 선정 올해의 청소년 도서, 2014년 <유다의 별> 한국추리문학 대상, 2015년 <가족의 탄생> 세종나눔도서 선정. 4개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됐고, <유다의 별>과 <백수탐정 진구> 시리즈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도진기 인천지방법원 부장 판사
“성매매는 착취이므로 성매매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오만하다. 성매매자를 지적,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는 우월감이 배어 있다. 적지 않은 여성이 성매매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현실 속에서, 단죄의 법적·도덕적 근거는 보다 성찰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제 모습은 추하답니다. 왼쪽 눈알은 없고, 다리는 절뚝절뚝, 목발이 없으면 아무데도 못 가는 몸. 괜찮다고요? 글쎄요, 사실 예전에는 좀 예쁘단 얘기도 들었어요. 네, 물론 외모가 다는 아니겠죠. 중요한 건 마음이죠. 근데 너무 흔해 빠진 말이네요. 비꼬는 거냐고요? 아니에요. 높으신 국회의원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할 리 있겠어요? 의원님을 존경해요. 진심이에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으시고, 얼마 전에는 성매매 처벌을 강화하는 새 법안을 발의하셨다고 들었어요. 성매매 처벌법이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기까지 한데, 정말 주관이 뚜렷하신 거 같아요.
볼품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자랐어요. 물도 자주 끊기는 주제에 여름에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물난리를 겪는 황당한 곳이었죠. 가난에 지겹도록 익숙했어요. 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맛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상황은 더 나빠졌어요. 아빠는 목뼈를 다쳐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죠. 남자친구는 아기만 남기고 떠나버렸고요. 정신 차려보니 아빠와 아기를 제가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요. 암담했어요. 아빠가 죽을 힘을 다해 절 대학까지 보내셨는데,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싶었어요. 아, 전 이래 봬도 대학을 나왔답니다. 부끄럽네요. 이런 일하면서 학벌을 내세우는 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저 생각 없이 사치스런 생활에 홀려서 이 일에 뛰어든 여자는 아니라는 인상을 자꾸만 드리고 싶어서였나 봐요.
생계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던 전 결국 선택을 했어요. 제가 들어간 곳은, 잠자리를 원하는 남자들에게 여자를 알선해주는 업체였어요. 어차피 내 한 몸 던지기로 마음먹은 거, 남자하고 자는 것만은 안 된다고 선을 그을 필요가 있어? 누굴 위해서? 누가 알아주는데? 몸을 지킬 대상도 이유도 없었던걸요. 남들은 더러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도둑질한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벌었든, 돈에는 색깔이 없잖아요. 세상에 저 같은 여자는 늘 있는 법 아니겠어요? 그게 하필 저라고 해서 뭐가 대수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몇 년을 일했죠.
우리가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암적인 존재라고?
그때 죽었어야 했어요.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침대였고, 한쪽 눈을 잃어 세상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몸도 잘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가족의 생계가 엉망이 된 건 당연했죠. 그런데 제게 마음의 상처를 안긴 건 따로 있었어요. 바로 그럴 듯하고 어려운 말로 높은 데서 우리를 분석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말 못할 수치감을 느꼈답니다. 제가 살았던 흔적은 모조리 부정되었어요. 전 없어져야 할 인간이자 근절의 대상에 불과했어요. 제가 남자들한테 준 위안은 아무것도 아닌가요? 부끄러움일 뿐이에요? 무섭고 딱딱한 말들. 성매매여성, 구조적 착취, 성풍속 보호, 엄중한 단속, 어둠, 갱생, 자활…. 그런 말들 안에 제 인생은 없었어요. 성매매 여성이 불쌍한 존재니 사회의 피해자니 동정하는 척했지만 결국은 그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 암적인 존재라는 이야기에 불과하더라고요.
형사들은 그때 제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당장 미웠어요. 사람을 벌거벗겨놓고 어떻게 그렇게 토끼몰이를 하듯 궁지에 몰았는지. 제 사건을 두고 경찰의 무리한 함정단속을 맹비난한 분 중에 의원님이 계시더군요. 근데 알고 보니 그 무렵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라며 주문했던 대표적인 분 또 한 의원님이시더라고요. 경찰청에 항의 방문까지 하셨다고요. 그러고 보면 형사들도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의원님은 의도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저와 우리 가족의 생계를 파탄 내고 만 거예요. 전 생각 끝에 의원님께 편지를 드리기로 했어요. 아니, 무슨 저주를 퍼부을 생각은 전혀 아니에요. 그저 맘 가는 대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 같은 인생과는 100만 광년쯤 떨어져 사실 게 분명한 의원님한테요. 그런데, 글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이 솟구칠까요. 아마도 지옥에 있는 제 마음 탓이겠지요.
의원님한테 여쭙고 싶어요. 성생활이란 게 행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지속적인 성생활을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시나요? 그런 운 좋은 사람들만 범죄로 단속될 걱정 없이 성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건가요? ‘선량한 성풍속의 보호’라고 하는데, 그 정체가 뭐죠? 뭔가 좋은 명분인 것 같긴 한데, 저처럼 성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만큼 절박한 여자들한테도 그런 대단한 명분을 요구해야 하나요? 아니면 성욕에 시달리면서도 ‘선량한 성풍속’의 유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을 것을 법이 남자들에게 요구한단 말이에요? 적어도 돈을 받고 성을 팔 필요가 없을 만큼은 먹고 사시는 분들한테서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네요. 과연 사회의 성풍속 유지를 위해 성욕을 참을 대단한 남자가 몇 명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부처라도 제어하기 힘든 것이 성욕이다
의원님이 과연 도덕적으로 우리보다 우월한 걸까요? 단지 돈을 주고받으며 성을 팔거나 살 필요가 없는 처지에 계실뿐인 건 아닌가요? 성매매, 맞아요. 떳떳하지 못해요. 그걸 가차 없이 심판하는 그 말씀은 구구절절 훌륭할 수밖에요. 하지만 성욕은 정말 강렬한 거예요. 그런 게 인간의 몸에 한 개 더 있었으면 석가모니도 성불하지 못하셨을 거라고 할 만큼 뿌리 깊은 본능이에요. 싹을 자를 순 없는 걸요. 거기에 졌다고, 그렇게 크게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감히 다시 말하는데, 의원님이 성매매를 하는 당사자보다 도덕적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요, 의원님은 단지 욕망이 그 사람들과 다를 뿐이거나 아니면 그저 쇠약한 것일 뿐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의원님은 힘을 가졌죠. 도덕이 아니라 힘 말이에요. 자신들이 버렸거나 관심 없는 행위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윤리의 이름으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행동을 문명국가에서는 폭력이라고 부르지요. 혹은 자유의 적이라고 하기도 해요. 자신은 이제 싫증나버린 죄악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이겠죠. 그런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결국은 얄팍한 오만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내려다보며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편견을 휘두르며 우월감을 만끽하고, 자신이 저지를 의사를 상실한 ‘죄’에 빠져 있다고 하여 상대를 범죄자로까지 몰아붙여도 괜찮은 건지요. 이런, 너무 나가버렸네요. 죄송해요, 의원님.
따지고 보면 성욕은 배고픔이나 다를 거 없어요. 다만 동굴 시대부터 왠지 이 행위만은 밥 먹는 일보다 조금 더 은밀하게 해왔다는 것일 뿐.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죠.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은 다양할 거예요. 대개는 돈이죠. 돈으로 밥을 사먹고, 서비스를 사요. 우린 그걸 다 인정하구요. 하지만 성에 관한 한 유독 돈이 끼어들면 ‘선량한 성풍속’을 해친다? 좀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런 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언짢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걸 왜 처벌해야 하는지, 절 좀 설득시켜 주세요.
인물 좋고 돈 많고 그런 잘난 남자들은 얼마든지 길이 있나 보더라고요. 하지만 다 그렇진 않잖아요. 연애에 재능 없는 모태솔로들, 못난이, 장애인, 홀아비, 혼자된 노인들은 어떡해야 하죠? 몇 푼의 돈이 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사람들한테, ‘성풍속’을 위해 참으라고 법은 말하는 건가요? 그 사람들은 이제 평생 섹스를 하지 말고 살아야 하나요?
아, 남자들의 성욕은 알 바 아니라고요? 우리 같은 성매매 여성들을 위하고 싶으시다고요? 성매매의 본질은 착취라고요? 글쎄요, 그건 비유나 상징일 순 있어도 실제는 될 수 없지 않을까요. 착취는 감금, 갈취 같은 게 결부된 거 아니에요? 성매매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는 거래를 원하는 대등한 주체가 있을 뿐이에요. 폭력과 착취가 있다면 당연히 그 이유로 처벌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성매매 자체가 폭력과 착취를 필연적으로 낳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성매매와는 완전히 별개의, 다른 차원의 범죄예요.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같은 건 아니에요. ‘본질과 현상의 차이’라고 하는 어려운 말도 있던데. 생길 수 있는 부산물 때문에 행위를 억압하는 건 주객전도라고 하죠.
돈을 매개한 것만 선량한 성풍속에 반한다?
‘성매매여성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라고요. 그런 건가요? 하지만 제가 괜찮다는데도요? 제 자신의 의지로 하는 데도요? 당사자가 동의해서 했는데 누가 누굴 모욕한 거예요? 혹시 그걸 보는 의원님이 모욕당한 느낌을 받은 것뿐 아니에요? 사람 잡네요. 전 생계가 걸려 있다고요. 그런 관념적인 이름 붙이기가 우리의 생계를 떨궈낼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요? 우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우리의 관계를 규정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신이세요?
성매매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라고요? 구조적? 그 애매한 말의 실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폭력이 뭔지는 알겠네요. 누굴 때리거나 억지로 뭘 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상해요. 사무실 언니, 나를 돈 주고 산 남자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때리지도 않았고요. 내게 뭘 하도록, 혹은 못하도록 강요한 사람은 바로 의원님 같은 분들하고 경찰이었어요. 내게 정말 폭력을 가한 사람이 과연 누구죠? 동정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누구인 거죠? 제겐 실제적 폭력이 구조적 폭력보다 중요하고, 그 구조적 폭력마저 다른 관점으로는 의원님 쪽에서 행사하신 걸로 생각되는데, 지나친가요?
성을 두고 돈 거래는 안 된다고요? 어떻게 사랑 없이 섹스를 하냐고요? 하하하. 여기서 좀 웃어도 되죠? 의원님께 거꾸로 물어보고 싶네요. 그럼 요즘 사랑으로 섹스하는 사람은 몇 명쯤 있나요?
그래도 사회엔 건전한 성풍속이란 게 있지 않냐고요? 성풍속이라, 근데 전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애정을 갖고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당연히 선량한 성풍속에 맞겠죠. 그럼 그 밖의 경우는요? 호기심이나 순간적인 욕구로, 혹은 그저 술에 취해서 이루어지는 건요? 매일 상대를 바꾸어가며 자는 불나비들은? 이건 다 선량한 성풍속에 맞나요? 아무튼 이 사람들은 처벌대상이 아니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 사는 모습일 뿐 성풍속이니 뭐니 하는 거에 어긋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성생활에도 윤리의 칼을 들이대겠다는 엄숙한 도덕 전사들한테 이건 왜 괜찮은지 그 기준의 합리성을 묻는 거예요.
성매매 단속한다고 다른 나라보다 성풍속 건전하나?
돈을 매개로 한 것만은 선량한 성풍속에 반한다? 왜 그런 거예요? 죄송하지만, 성풍속의 보호란 게 혹시 그저 불쾌감인 건 아니에요? 의원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불쾌감을 표출하기 위해 그런 실체가 애매한 말을 방패막이로 갖다 붙이신 건 아닌가요? 이를 악물고 욕구를 참다가 실패하고, 다른 해결방법은 없고, 그래서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건 성풍속에 위반된다고 체포되고. 무슨 놈의 성풍속이 그래요? 이거야 사람 죽이는 풍속이잖아요. 그리고, 성풍속도 풍속인데, 풍속을 법으로 강요하나요?
제가 만난 남자들, 그저 보통사람이었어요. 모텔 방 잡고 여자 부르는 남자라고 해서 다 변태거나 성범죄자 같은 사람이진 않더라고요. 직업도 다양했어요. 회사원, 자영업자 아저씨, 군인, 중국동포, 막노동자까지요. 다 똑같았어요. 누구도 괴물은 아니었어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특별한 순간에 불과했던 거죠. 그런 보통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범죄는 살인, 강간, 사기, 폭력, 착취 그런 것들이잖아요. 자신만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하러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하고,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을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방법으로 실현한 사람들하고 같이 취급하는 건가요?
성인끼리 자유의사로 성을 거래한 행위는 그저 사회적 평가에 맡기면 그만 아닌가요? 어떤 행동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이걸 ‘비범죄화’라고 하더군요) 그 행동을 권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것이 어떤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과 그것이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엄밀히 구분돼야 하지 않을까요? 저나 그 남자들, 부끄럽지 않은 거 아니에요. 어차피 세상 눈치 보고 있어요. 다만 우릴 범죄자라고 단죄하려 드니까 반발심이 이는 걸요.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성풍속이 건전한가요? 모르겠어요. 낮과 밤의 얼굴이 이만큼 다른 도시가 전 세계적으로 또 있는지. 그나마 단속과 처벌이 없었다면 더 불건전하게 변했을까요? 그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겠다는 정도겠네요. 그렇다면 처벌해야 할 실제적인 이유도 없는 거 아니에요?
정말로요, 조금 더 양보해서, 돈이 개입되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전한 성풍속의 유지라는 것에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왜 이것을 굳이 형벌로 조성하고 강제해야 하는 거죠? 캠페인이나 의식개혁을 통해 줄여나가는 쪽이 더 효과적이고 적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법은 가장 손쉽지만 후유증이 가장 심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적지 않은 여자들이 성을 찾는 남자들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이건 저주나 주술이 아니라 현실이죠. 그 여자들 전부가 그 돈으로 명품 백을 사는 건 아니에요. 저 같은 여자애는 물론, 의탁할 데 없는 할머니도 있어요. 음습한 지하경제의 한 축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종의 부의 재분배죠.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여기서 가장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세금 징수와 달리, 기꺼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자산의 분배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바람직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걸 대체할 복지 제도를 나라가 나서서 마련할 자신도 없으면서 대체 왜 막는 거죠? 그 탓에 힘들어지는 우리의 아우성은 혹시 안 들리시나요?
의원님은 스웨덴처럼 여자는 놔두고 성구매자인 남성만을 처벌하자는 주장도 하셨던데요. 의아해요. 우리를 봐주는 것 같아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근원적인 형평성, 평등에 어긋나잖아요. 구매자를 처벌해서 현상을 근절하자는 모양인데, 인문의 근본을 뒤흔들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해요? 차라리 쌍벌주의라면 그 입장에 반대하지만 이해는 가요. 그런데 한쪽만 쏙 뽑아내 범죄로 만든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긴다, 그래서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매수자를 처벌해야 한다. 이런 논리 같은데, 전 아무리 들어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 같거든요.
반대로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다고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니까요. 성매매에서만은 수요자가 먼저라는 건 근거 없는 편의적 독단으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상식적인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변칙이라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매수자 남성들이 절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이유로 근원적인 룰조차 위반해가면서 과도하게 핍박하는 건 아닌지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험로로 가도 괜찮은 건지요. 혹 어떤 이데올로기적 필터로 본질과 원칙이 왜곡된 건 아닌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스웨덴을 모범으로 삼았는가?
변두리 역사. 주역이 못된 변방에서의 초라한 푸닥거리. 그런데 왜 자꾸 실수를 반복하는 거죠? 왜 늘 극단이 힘을 얻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자국민의 3분의 1을 도살한 캄보디아의 악마 폴 포트조차 옹호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미국 탓이라고. 세상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배에 태워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추방시키려고 했지만 영국이 해로를 막자 가스실에 모아 아예 학살해버렸죠. 그럼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영국 탓인 거예요? 좀 그러지들 말았으면 해요. 나쁜 건 나쁜거고, 틀린 건 틀린 거예요. 좌든 우든, 다른 이데올로기든.
그리고, 뚱딴지같이 왜 스웨덴이죠? 우리가 언제부터 스웨덴을 모범으로 삼았다고요? 스웨덴은 성매매 대처에 관해 그렇게 첨단인가요? 그에 못지않게 세계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 얼마든지 있고, 지금껏 우리는 그 나라들을 참고해왔는데. 독일·네덜란드·스위스·캐나다 같은 나라는 성매매가 합법이고, 프랑스·벨기에·덴마크·이탈리아는 개인의 성매매가 허용된대요. 미국 대부분의 주와 중국, 태국, 필리핀같은 나라는 처벌을 하는데 쌍방처벌이에요. 남자만 처벌하는 나라는 스웨덴뿐인 모양이더라고요.
우리가 독일법을 가져온 걸로 아는데, 왜 이것만 과감하게 스웨덴 거를 참고하려는 거죠? 성을 매수하는 남자들에게 반감을 갖는 의원님 같은 분들이 선진국의 사례를 뒤져 그중에서 입맛에 맞는 모델을 찾아낸 거라고 보이는데, 아닌가요? 하긴 스웨덴 혼자서 특이한 제도를 갖고 있으니 눈길이 갈 법도 해요. 모두가 강연을 듣고 있는데 한두 명이 나가면 그 사람들이 외려 신경 쓰이잖아요? 강연이 별론가? 나도 나가야 할까? 하지만 대다수는 그래도 아직 앉아서 강연을 듣고 있단 걸 잊으면 안 되죠.
의원님은 온갖 좋은 말을 잔뜩 하시지만, 결국 제가 하는 일이 더럽단 거잖아요. 그래서 당장 그만 두고 딴 일 알아보란 거잖아요. 대체 제가 할 수 있는 무슨 일이 있는데요? 어떤 일을 알아봐주실 건데요? 식당? 청소부? 물론 정말 떳떳한 일이고 좋죠. 묵묵히 궂은 일 하시는 그분들을 존경해요. 하지만 수입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제가 배고픈 건 그렇다 치고, 제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돈 되고 쉬운 일만 찾는다고 욕하실 수도 있겠네요. 아, 그럼 의원님이 청소일 하실래요? 혹시 싫으신가요? 그럼 전 왜 해야 되죠?
이런, 죄송해요. 너무 넋두리가 심해져버렸네요. 전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 제가 겪은 불행한 사고가 꼭 일어났어야 할 일일까. 생각할수록 정말 알 수 없어졌거든요. 딱히 피해자가 없어 보이는데 굳이 범죄로 만들어야 할 이유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가 원치 않는 보호를 왜 우리한테 베풀겠다고 하는지, 혹시 의원님 같이 말과 힘을 독점한 분들이 그저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유는 아닌지, 성을 사고 팔 필요가 없는 행복한 사람들의 폭력은 아닌지, 그런 것들이 말이에요.(글 중 ‘의원님’은 특정인을 모델로 하지 않았습니다)
도진기 - 서울대 법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2010년 <선택>으로 추리작가협회 신인상, 2013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문광부 선정 올해의 청소년 도서, 2014년 <유다의 별> 한국추리문학 대상, 2015년 <가족의 탄생> 세종나눔도서 선정. 4개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됐고, <유다의 별>과 <백수탐정 진구> 시리즈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도진기 인천지방법원 부장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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