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2.13 00:01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광명성 4호 발사까지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향한 막가파 행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 그리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로 맞서고 있지만 제재와 압박, 억지력 구축만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견해가 대세인 것 같다. 대북 정책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 대안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핵무장을 통한 상호억지만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북한 핵에 우리의 핵으로 맞서자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아예 1월 28일자 사설에서 ‘핵무기 개발 공론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여러 정치인과 지식인들, 그리고 일부 보수시민 단체들도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불안하니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적 핵무장의 길 등 모든 방안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따져 보면 이러한 핵무장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중국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도구론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전환적 패러다임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이 핵보유를 표방하는 순간 거센 역풍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원자력산업은 말 그대로 거덜이 날 테고, 한·미 동맹 역시 파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한국 경제 또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스라엘의 경우를 거론하지만, 이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에는 미군도, 미국의 핵우산도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강한 대미 로비력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핵무장이 동북아 핵 도미노의 발화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과는 한층 더 명확해진다. 북한의 핵 위협만으로도 절절 매는 나라가 핵 강국 중국과 새로 핵무장한 일본 사이에 놓이는 상황을 무슨 수로 대처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북한과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핵무장을 거론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이 이를 아무리 소리 높여 봐야 과연 북한이나 중국에 먹힐까. 오히려 정상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보수세력만 내심 환영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한 압박으로 미국이 전술핵을 재배치할 리도 만무하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핵과 한·미 두 나라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대북 억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만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핵무장론은 결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선제타격 같은 군사행동 역시 대안은 아니다. 국제법적 제약은 차치하더라도, 평양이 지난 20년간 재래식 및 핵 억지력을 꾸준히 증강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우리의 선제타격은 한반도의 확전과 그에 따른 대규모 인명 및 재산 손실을 수반할 공산이 절대적이다. 잃을 게 많은 우리로서는 결코 감수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속이 뒤틀리고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결국 협상의 틀을 새로 짜는 것 이외에 다른 방안이 없어 보인다. 과거의 실패가 협상카드 자체를 걷어차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창의적 협상을 만드는 원칙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논리적 수순이다.
첫 번째는 솔직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동시에 북한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신중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접점을 만들어갈 기본 바탕이다. 두 번째 원칙은 현실성이다. 협상의 목표를 상황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단기적으로 달성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선책이지만 핵시설과 프로그램의 가동을 멈춰 핵물질 추가 생산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평양은 조건만 맞는다면 이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세 번째 원칙은 유연성이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잠정 중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협상,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성 발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해야 한다. 단지 북측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부시한다면 반전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를 협상 현안으로 수용하고 도리어 이를 근거로 북한의 반대급부를 따져 묻는 것만이 실질적인 돌파구다.
박근혜 대통령의 깊은 분노를 안다. 그러나 지도자의 심기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국민 우선주의’여야 하는 이유다. 분노와 무력감의 끝에 나오는 선택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 대안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핵무장을 통한 상호억지만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북한 핵에 우리의 핵으로 맞서자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아예 1월 28일자 사설에서 ‘핵무기 개발 공론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여러 정치인과 지식인들, 그리고 일부 보수시민 단체들도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불안하니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적 핵무장의 길 등 모든 방안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따져 보면 이러한 핵무장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중국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도구론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전환적 패러다임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핵무장을 거론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이 이를 아무리 소리 높여 봐야 과연 북한이나 중국에 먹힐까. 오히려 정상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보수세력만 내심 환영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한 압박으로 미국이 전술핵을 재배치할 리도 만무하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핵과 한·미 두 나라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대북 억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만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핵무장론은 결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선제타격 같은 군사행동 역시 대안은 아니다. 국제법적 제약은 차치하더라도, 평양이 지난 20년간 재래식 및 핵 억지력을 꾸준히 증강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우리의 선제타격은 한반도의 확전과 그에 따른 대규모 인명 및 재산 손실을 수반할 공산이 절대적이다. 잃을 게 많은 우리로서는 결코 감수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속이 뒤틀리고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결국 협상의 틀을 새로 짜는 것 이외에 다른 방안이 없어 보인다. 과거의 실패가 협상카드 자체를 걷어차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창의적 협상을 만드는 원칙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논리적 수순이다.
첫 번째는 솔직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동시에 북한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신중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접점을 만들어갈 기본 바탕이다. 두 번째 원칙은 현실성이다. 협상의 목표를 상황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단기적으로 달성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선책이지만 핵시설과 프로그램의 가동을 멈춰 핵물질 추가 생산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평양은 조건만 맞는다면 이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세 번째 원칙은 유연성이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잠정 중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협상,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성 발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해야 한다. 단지 북측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부시한다면 반전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를 협상 현안으로 수용하고 도리어 이를 근거로 북한의 반대급부를 따져 묻는 것만이 실질적인 돌파구다.
박근혜 대통령의 깊은 분노를 안다. 그러나 지도자의 심기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국민 우선주의’여야 하는 이유다. 분노와 무력감의 끝에 나오는 선택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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