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4.04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김종인 대표가 일원인 서강학파
서구 첨단 경제 이론 무장하고 개발 경제 시대 성장 이끌어
식민지 半봉건사회론에 뿌리 둔 운동권 낡은 인식 불식시키고
수권 정당 만들어 낼 것인가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모두(冒頭)에 통진당의 이념적 지향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통진당이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른바 자주파에 의해 도입된 강령이다.
자주파는 민족해방(NL) 계열로 우리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半)봉건사회
또는 반(半)자본주의 사회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 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은 통진당의 지도 이념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박은
운동권의 기본 노선이기도 하다.
이 논리는 한동안 한국 경제학계의 주류 논리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큰 위세를 떨쳤다.
요약하면 '남한은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변한 것뿐이고,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반은 남아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압도적 채택률을 자랑했던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라는 경악스러운
설명이 버젓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민족경제론'이란 다른 이름으로 치장된 이 논리의 결론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이후의 한국 사회경제의 진로는
다 비정상적인 일탈이기에 남한은 가난한 나라에서 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고, 종속적인 국가에서 더 종속적인 국가로
전락하리라는 것이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가 시장경제 체제에선 자립적 근대국가를 이루기가 불가능해
민족 해방 혁명으로 사회주의로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한국 사회는 이런 주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고 번영과 자립을 이뤘다.
이 진영의 이론적 대부였던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는 이 과정을 보고 1980년대 중반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옥의 고통을 통해" 모택동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자기 이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은 박현채 교수 같은 사람도 있었다.
지적인 진실성을 결여한 정신적 파산이었다. 모택동주의와 종속이론의 한국적 변형인 이 허구적 주장은 결국 결과가
증명되는 경제학계에선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 사이비 이론은 한국사 등 관념론에 빠지기 쉬운 인접 학문으로 전이돼 아직도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국사학계의 한국 근현대사 해석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또한 소위 운동권과 현재 야권의 가치관·세계관의 주류를 이룬다. 통진당과 야권 연대를 구성하며 '2013년 체제론'이란
백일몽을 꾸었던 현 더불어민주당의 다수 세력은 이런 철 지난 감성을 기본 인식으로 깔고 있다.
경제학계에서 이 논리가 득세할 때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개진한 곳이 서강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서강학파'였다.
남덕우·이승윤 교수를 중심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과 세계경제 체제로의 적극적 편입을 통해 한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정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대에선 젊은 송병락 교수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이 진영에 동조했다.
일본 좌파 경제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서구의 첨단 경제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은 결국 1970~80년대 고도성장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실제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재밌게도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은 서강학파의 막내격이었다.
뿌리가 다른 두 세력이 동상이몽으로 잠시 동거하고 있으니 파열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씨가 더민주의 주류 운동권 몇 명 쳐낸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 남민전이나 사노맹 등에서
NL공산혁명 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이번에도 뻔뻔하게 더민주의 공천을 받았다.
이들은 이를 갈고 총선 혹은 대선 이후에 '고용 사장'인 김씨를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다.
과연 김종인씨가 더민주의 뿌리깊은 낡은 인식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수권 정당을 만들어낼 것인가.
더민주는 이런 세계관을 버리지 않고는 수권 정당이 될 수가 없다.
문제는 열혈 지지층이 낡은 인식을 지닌 행동파들이라 쉽게 내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에 대한 '용도 폐기론'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인태 의원은 총선 후에도 김씨가 주도 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사장'인 문재인 의원은 공공연히 정청래 의원의 불공천은 잘못된 것이라 변명하고 다닌다.
김씨의 정치적 도박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연장하려는 노욕이 아니라면 향후 이런 낡은 인식과 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그 진실성이 입증될 것이다.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야합의 형태로 가게 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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