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 논설위원
1999년 벨기에 거장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형제가 만든 영화 ‘로제타’는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로제타는 17세 여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일하던 식품공장에서 수습기간 만료와 함께 거리로 내쳐진다. 알코올의존인 엄마와 지저분한 트레일러에서 함께 사는 로제타에게 실업은 죽음과 다름없었다. 남자친구의 잘못을 고자질해 그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연애, 아니 삶 자체가 그녀에겐 사치일 뿐이다. 카메라는 로제타의 처절한 행적을 거친 호흡까지 담아 쫓아간다. 로제타가 유명해진 건 영화 이후다.
영화 개봉 후 벨기에에서는 미성년자·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래서 2000년에 나온 것이 ‘로제타 플랜’이다. 50인 이상 기업은 전체 고용의 3%를 청년으로 채워야 하고, 어기면 매일 1인당 74유로(약 10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정책이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그해에만 5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면서 1999년 22.6%이던 청년(15∼24세) 실업률은 15.2%까지 떨어졌다.
국내 정치인들이 그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이를 본뜬 청년고용할당제를 들고 나왔다. 흥미로운 건 2011년 6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친박 라인으로 출마 선언한 유승민 의원이 ‘한국형 로제타 플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사실이다. 곡절 끝에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3% 청년고용 의무를 지운 3년 한시법이 2014년 시행됐다.
그러면 원조 로제타 플랜은 어떻게 됐을까. 도입 3년 뒤 청년실업률은 21.8%로 되돌아갔고, 그 뒤로도 개선되지 않았다. 저학력 청년들에게 주어진 건 대부분 질 나쁜 일자리였다. 낮은 처우에 실망한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능력 아닌 특혜로 입사했다는 낙인도 견디기 힘들었다. 강제 일자리 배분 정책은 결국 폐기됐다. 국내에서도 공기업이 의무 고용한 일자리 상당수는 무기계약직·시간제 등으로 채워졌다.
더불어민주당이 4·13 총선을 앞두고 청년고용할당제 카드를 다시 꺼냈다. 청년 구직자가 몰리는 민간 대기업으로 확대한다는 공약이다. 청년 고용을 늘리려면 고용 경직성과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깨는 것이 근본책이다. 그런 노동개혁에는 매번 발목을 걸더니 이제 와서 반(反)시장적 미봉책으로 표를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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