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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공안 연행일기

바람아님 2016. 4. 16. 00:32
SBS 2016.04.15. 11:25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를 표절해 취재파일의 제목을 정했으니 박지원 선생께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올리고 가야겠습니다.

박지원 선생은 저보다 조금 일찍(1780년 정조 4년, 정확히 236년 전이니 아주 많이 오래는 아닙니다.) 베이징에 오셨다가 황제의 명을 받고 열하(여름 별궁이 있는 지금의 청더((承德))를 가 본 최초의 조선인 외교사절이었습니다. 


출발에서 귀환까지 5개월 남짓 겪은 일을 조선조 최고의 저작으로 남기신 박지원 선생을 생각하며, 열하일기 완역본을 주문하고 취재파일을 씁니다. 열하일기의 1조분의 1에도 감히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첫 경험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제가 중국공안에 붙잡혀 본 최초의 조선인도 아니고 최초의 특파원도 아니지만 저에게는 최초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길에 간 이유는 집단탈북으로 화제가 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원래 근무했다는 연길의 북한식당을 취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한국 언론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었던 터라 북한식당 직원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영상촬영을 위해 카메라기자를 먼저 보내고 저는 멀리서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어느새 북한식당 매니저 두 분이 나타나 거친 말투로 저를 제지했습니다. 불법취재라며 집요하게 뭘 찍었는지 핸드폰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저는 개인 핸드폰을 보겠다는 것이 오히려 불법이라고 맞섰습니다.


실랑이를 하던 도중 중국 공안이 출동했고 저는 먼저 붙잡혀 있던 카메라기자와 함께 연길시 공안국에 연행됐습니다. 불안한 상태에서 순찰차에 실려 간 저는 공안국에 들어서면서 묘한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력이 풍부한 중국답게 공안국 인원도 충분한지 우리 취재팀 두 명을 조사하는데 무려 정복경찰 2명, 사복형사 1 명이 배치됐습니다.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취조를 받는데 세명의 공안원 모두 우리말을 너무 유창히 구사하시는 겁니다. 알고 보니 모두 조선족 공안원들입니다. 심지어 생김새와 표정까지 한국 경찰서의 형님들(경찰출입기자들은 형사님들을 친근하게 형님이라고 부릅니다)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늦게까지 경찰 출입 기자를 했던 저는 마치 서울의 한 경찰서에 와 있는 듯한 편안함 속에 조사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한 범행(?)자체가 워낙 경미한 지라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삭제하고 나니 더 이상 조사랄 것도 없었습니다. 나머지 두 시간 남짓은 공안 형님들의 진지한 훈계로 채워졌습니다.

“당신은 중국 취재 비자를 받으면서 취재를 할 때는 현지공안에 미리 신고해야 한다는 것도 안 배웠느냐? (물론 배웠지요. 하지만 신고하면 당연히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여기가 한국처럼 기사를 마음대로 쓰는 자유주의 국가인지 아느냐? (흠.. 한국을 상당히 부러워하시는 듯 보입니다...한국도 꼭 그런 건 아닌데 말이죠.) 


돌려가며 취재팀을 엄하게 꾸짖으시던 세명의 공안 형님들에게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더니 의외로 친절히 안내해 줍니다. 손 씻고 나오는데 휴지 여기 있다며 손수 두 장씩 뽑아줍니다. 무뚝뚝하고 무섭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순박하고 정이 있는 한국 경찰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특파원 임기 끝내고 돌아가는 3년 뒤에 한국 놀러 오시면 소주를 사겠다며 정답게 악수까지 하고 공안국을 나왔습니다.

두 시간 가량 조사를 받고 미리 몰래 전송해 놓았던 화면과 녹취로 부랴부랴 8시 뉴스를 만들어 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점심도 굶은지라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정신없이 잤습니다. 조선족 공안원들에게 가졌던 다소 친근한 마음은 그러나 다음날 깨졌습니다.


아침 7시 호텔방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다짜고짜 몇 시 비행기로 북경에 돌아가느냐고 고압적으로 묻는 목소리였습니다. 어제 저희를 취조했던 조선족 사복형사이십니다. 그래서 왜 비행기시간을 묻느냐고 되물었지요. 한참동안 이유를 이야기 하지 않던 그분은 결국 카메라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연길에서 더 취재한 것이 있는지 카메라를 확인해야 보내주겠다며 당장 호텔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한국방송에 취재한 내용이 나가면 비자를 취소해서 추방해 버리겠다는 엄포와 허가받지 않은 취재를 하면 안된다는 훈계가 전화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미 어제 취재 내용은 8시뉴스에 보도된 뒤였습니다.) 저는 공안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어느 호텔에 묵는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 방 번호를 정확히 알고 전화했다는 데 한번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호텔에 외국기자가 묵으면 호텔 프론트에서 자동적으로 공안국에 신고를 하게 돼 있다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기사가 나가기는 했지만 철저한 중국의 언론 통제를 처음 온몸으로 느낀 출장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GDP가 세계 2위인 나라에서 이토록 철저히 언론통제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더구나 저는 중국 국내의 여론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외신기자에 불과한데도 이런 통제를 당하니 국내기자에게는 어떤 통제가 가해질까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중국에는 무려 24개의 채널을 가진 중앙텔레비젼방송국(CCTV)을 비롯해 366개의 TV 방송국, 356개의 라디오 방송국, 1천918개의 신문이 있습니다. 천문학적 숫자만큼 기자들도 많을텐데 이들을 또 통제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할까요.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회 감시기능(Watch Dog)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회비리와 부패한 관료가 언론의 감시망에 걸려 사라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금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도 바로 ‘부패척결’입니다. 간단히 언론통제만 완화해도 ‘부패척결’의 속도가 최소한 열 배는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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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