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5.1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하버드대에서 민벌레라는 매우 희귀한 곤충의 진화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낙 희귀한 곤충이다 보니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순간 곧바로 세계 제1인자로 등극하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일 뿐 분류에서 생리, 행동, 생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구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엄습했다. 그중 제일 난감한 분야는 분류였다.
일단 무슨 종인지 알아야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데 신출내기 까막눈인 나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 민벌레 분류학의 내 유일한 스승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애슐리 거니 박사님이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 훗날 내가 파나마에서 발견한 신종에 조로티푸스 거니아이
(Zorotypus gurneyi)라는 이름을 봉헌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니 박사님은 내 논문이 출간되기 한 달여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최근 남태평양 작은 섬에서 발견된 털북숭이 신종 바구미에 스타워즈 추바카의 이름이 붙여졌다.
최근 남태평양 작은 섬에서 발견된 털북숭이 신종 바구미에 스타워즈 추바카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로써 스타워즈 등장인물이 학명으로 부활한 경우는 박테리아, 진드기, 개미, 거미, 말벌, 딱정벌레, 반삭동물
그리고 어류에 이르기까지 13종에 달한다. 추바카는 일찍이 말벌 학명에도 이름을 올렸었다.
가장 자주 영광의 자리에 오른 스타워즈 등장인물은 각각 3종에 이름을 올린 요다와 다스베이더다.
이 둘은 아예 속명(屬名)으로도 등극해 앞으로 더 많은 종을 거느릴 참이다.
핸 솔로는 이름이 통째로 멸종한 삼엽충의 학명이 되었다.
'핸(Han)'은 속명, '솔로(solo)'는 종명으로. 하지만 화석의 이름이 됐다는 게 조금 께름칙하다.
한물간 영광이라는 뜻인가?
자신의 이름이 학명에 오른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그래서 학생 중에는 종종 지도 교수에게 이 영광을 헌납하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그런 종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못생겼다는 데 있다.
나는 아직 제자나 후학으로부터 이런 영광을 얻지 못했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동물이 진짜 어떻게 생겼는지
꼼꼼히 살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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