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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8] 인류세

바람아님 2016. 5. 24. 09:16

(출처-조선일보 2016.05.24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46억년 지구의 역사는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로 나뉜다. 

공룡이 사라지던 약 6600만년 전부터 시작된 신생대는 다시 7개의 세(世, -cene)로 나뉘는데, 

그 맨 마지막이 바로 우리 인간이 농경을 하며 살아온 지난 1만여년의 홀로세(Holocene)이다. 

그런데 최근 100여 년을 따로 떼어내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딱히 

상응하는 지층이 있는 게 아니라서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엄청난 양의 온실기체를 뿜어내 기후변화를 

일으키며 하루 10종의 생물을 멸종으로 내모는 데 기여하는 인간의 궤적을 직시하자는 주장이다.


나는 2012년 한국 작가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행사인 '카셀 도쿠멘타'에 

초청받은 문경원·전준호의 공동 저술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에 '인간실록편찬위원회'라는 글로 참여했다. 

임금이 서거하면 사관이 각자 기록해둔 자료를 가지고 들어와 실록을 편찬하던 우리 전통이 인간이 멸종한 후 지구를 지배할 

새로운 지적 동물의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위원회의 결성부터 문제였다. 

무려 1억년 이상 살다간 모기의 실록도 아직 착수하지 못했는데 겨우 수십만 년 정도 살다 사라진 인간의 실록을 편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구 역사상 가장 엄청난 피해를 끼치며 '짧고 굵게' 살다 간 인간의 만행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5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지금 지구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는 단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고갈이다. 

특별한 과학적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기후변화에 비해, 

매일 우리 눈앞에서 생물이 멸종하는 게 아니다 보니 생물다양성 고갈의 심각성은 알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 바라는 욕망"이라 했지만 

인류세로 인한 유명세는 정말 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