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5.31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고 가르쳤지만, 이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매년 만리장성을 찾는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불과 몇 뼘 남짓한 성벽을 보러 오는 건 절대 아니다.
진흙으로 빚은 8000여명의 진시황 친위부대 병사가 빼곡히 서 있는 병마용갱,
때로 깊이가 1.5㎞에 달하는 협곡이 장장 445㎞에 이르는 그랜드캐니언,
아찔한 계곡 위 70m 높이에 140m 길이로 출렁이는 캐나다 밴쿠버의 카필라노 현수교….
사람들은 다름 아닌 지나침의 미학이 연출하는 장관을 만끽하려 이런 곳을 찾는 것이다.
2013년 가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며 처음 경내로 들어서는 내 눈에 진입로를 만드느라 깎아낸
산허리 민둥 언덕이 흉물스럽게 다가왔다.
곧바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 언덕을 어떻게 꾸밀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가지만 주문했다.
프로방스의 라벤더, 제주도의 유채꽃, 그리고 군포시청의 철쭉처럼 그냥 한 수종으로만 심자고.
여러 가지를 집적대는 것보다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게 때론 훨씬 더 강렬한 감동을 선사한다.
여러 다양한 제안이 있었지만 우리는 끝내 가장 토속적인 우리 고유종 찔레꽃을 심기로 했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에 가면 실개천 둑방길을 따라 찔레꽃이 줄 지어 피어 있다지만 우리처럼 언덕 가득 눈이 모자라게
찔레꽃을 심어 놓은 곳은 없을 것이다. 첫해인 작년에는 토양도 척박한 데다 갓 옮겨 심은 묘목이라 그랬는지
그저 듬성듬성 피었을 뿐이었지만 금년에는 동산 가득 만개할 조짐이 또렷하다.
어제 우리는 소리꾼 장사익 선생을 모시고 그의 대표작 '찔레꽃'의 노래시비 봉헌식을 올렸다.
장사익 선생께서 노랫말을 손수 당신의 필체로 써주셔서 어른 키 높이의 멋진 비석을 만들어 세웠다.
앞으로 한 2주 동안 우리 국립생태원 찔레동산에는 하얗고 순박한, 그래서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이
흐드러질 것이다. 향기가 너무 슬프더라도 제발 목 놓아 울지는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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