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6.07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지난달 28일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하람베'라는 이름의 수컷 고릴라가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른 키 두 배나 되는 울타리를 넘어 고릴라 우리로 떨어진 네 살배기 사내아이를 구하기 위해
심각한 멸종 위기종인 산악 고릴라를 죽인 동물원에 적지 않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는 멸종 위기종 동물 한 마리의 목숨과 74억 인간 중 한 사람의 목숨을 비교하며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를 묻는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건 아닌 것 같다. 모든 생명은 다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하람베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반추해보자.
하람베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반추해보자.
그는 17년 전 텍사스의 글래디스포터 동물원에서 태어나 2년 전 번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시내티로 이주했다.
비록 고릴라로 태어났지만 자기 종족의 본향인 아프리카에는 가본 적도 없는 친구였다.
평생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인간의 볼거리로만 살아온 존재였다.
그런 그의 작은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아이가 뛰어들었다.
그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난생처음 당한 일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우리는 단 10분 만에 제거해버렸다.
그것도 그의 열일곱 번째 생일 바로 다음 날에.
동물원의 결단을 대뜸 비난하기도 어렵다.
동물원의 결단을 대뜸 비난하기도 어렵다.
만일 내 아이가 고릴라 우리로 떨어졌더라도 그 순간 동물의 생존권에 대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인터넷에 유통되는 동영상 속 하람베는 동물행동학자인 내 눈에 아이를 해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람베(Harambe)는 스와힐리어로 '서로 보듬고 나누며 함께 일하자'는 뜻이다. 게다가 고릴라는 채 식 동물이다.
우리는 지금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한 젊은이를 추모하고 있다.
한 번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1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그의 영전에 시민의 포스트잇이 이어지고 있다.
얼떨결에 친구를 잃은 고릴라들도 어쩌면 동물원 우리 벽면에 마음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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