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매화나무, 제주 돌담 그리고 골프채… 근심 녹여주네, '현대의 풍속화'

바람아님 2016. 5. 17. 07:39

(출처-조선일보 2016.05.17 김미리 기자)

이왈종 화백 '제주 생활의 중도'展

이왈종 화백 사진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제주 돌담, 알사탕 같은 꽃송이 잔뜩 인 매화나무 아래 
작은 집이 둥지 틀었다. 수돗가 수조엔 물옥잠 동동, 낮잠에서 갓 깬 누렁이는 멍멍, 
나뭇가지 사이사이 앉은 노란 새들은 짹짹댄다. 
그림이 공감각(共感覺)으로 소곤소곤 말 건다. 마음의 근심이 이내 녹는다. 
눈동자 한 바퀴 휘감다 시야에 쏙 박힌 게 있었으니, 집 외벽에 기댄 골프채다. 
풋. 화가가 슬쩍 던져둔 해학의 화룡점정이 보는 이의 웃음보를 건드린다.

"우리가 왜 사는 건가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거 아닌가요. 
행복한가 불행한가는 마음의 조작입니다. 
마음을 밝게 하면 행복이 찾아오는 겁니다."

중절모 눌러쓰고 이왈종(71·사진) 화백이 화사한 봄빛 만개한 그림 앞에서 너털웃음 지었다. 
"사람들 행복해지라고 그림 그리지요. 더 뭐가 필요하겠어요?" 
이 화백은 다음 달 12일까지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인전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를 연다. 4년 만의 전시다. 
그는 "그 사이 세상에 궂은 일이 많아 전시하기가 싫더라"고 했다.

1990년 서울의 교수직(추계예대)을 버리고 제주에 정착한 뒤 줄곧 화제(畵題)로 삼은 '중도(中道)'를 전시 주제로 내걸었다. 
'중도(中道)'란 불교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추구하는 평상심을 일컫는다. 
새와 사람, 골프채와 장독 어우러진 풍경이 '중도'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화백은 "꽃과 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풍경이고, 골프는 현대의 모습이다. 
내 그림은 현대의 풍속화이고, 그 안의 모든 인간과 사물은 가치의 경중이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은 생명을 지닌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고 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 아래 돌담에 둘러싸인 정겨운 제주의 일상을 그린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2015년). 두꺼운 장지에 채색하고 긁어 그린 그림이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 아래 돌담에 둘러싸인 정겨운 제주의 일상을 그린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2015년). 
두꺼운 장지에 채색하고 긁어 그린 그림이다. /현대화랑 제공

그러고 보니 사람·새·꽃·자동차 등 그림 속 등장 요소들이 실제 크기, 원근에 상관없이 비슷한 크기다. 

"무심하게 있는 것 같지만 한 화폭에서 서로 균형을 이루며 의존하고 있지요. 

삼라만상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불교의 연기(緣起)설과 맞닿아 있지요."


제주에 정착한 지 27년째다. 제주도 많이 바뀌었고, 그 안의 작가도 세월을 비켜가진 못했다. 

"서울 근교로 가면 전화 한 통이면 제자 전시회다, 사은회다 다 가야 할 것 같았다. 

'안 가도 덜 미안한 거리'로 가자고 찾았던 게 제주도였다"고 노년의 작가가 말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내 인생을 걸었는데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내렸네요. 

이젠 일 년에 한두 점에만 집중하려고요. 좋아하는 골프 즐기면서. 허허." 

(02)2287-3591



이왈종 화백 '제주 생활의 중도'展

2016. 5. 17 ~ 6. 12 

사간동 현대화랑 (02)2287-3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