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6.25 어수웅 기자)
케임브리지 고전학과 비어드 교수, 탐정소설처럼 재밌게 역사책 저술
정치·음식·화장실… 꼼꼼히 살펴
"무절제와 사치, 쾌락 넘치는 도시" "친밀도 따라 투표" 등 분석 내놔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메리 비어드 지음
세계사 커튼 뒤의 비주류였다거나,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비운(悲運)의 역사라는 공통점 외에도,
이 책들에는 교집합이 하나 더 있다.
왕이나 권력에 집중한 거대담론이 아니라, 좌충우돌하는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미시적인
서사라는 점이다.
지난주의 책 '북유럽 세계사'를 썼던 마이클 파이는 이번 주의 책 '폼페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일종의 과학 수사관이 되어 죽은 자들의 도시 뒷골목과 저택을 샅샅이 둘러보는 모험."
역사책을 탐정소설로 바꾼 주인공은 케임브리지대 고전학과 메리 비어드(61) 교수다.
역사책을 탐정소설로 바꾼 주인공은 케임브리지대 고전학과 메리 비어드(61) 교수다.
그녀가 올해 받은 스페인 왕가(王家)의 사회과학부문 상 선정이유서가 비어드의 매력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전문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쉽고도 유의미하게 전달하는 재능."
윽박지르는 교수가 아니라, 수다스러운 셜록 홈스가 되어 비어드는 우리를 폼페이의 골목길로 이끈다.
윽박지르는 교수가 아니라, 수다스러운 셜록 홈스가 되어 비어드는 우리를 폼페이의 골목길로 이끈다.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라진 도시. 도로·주택·급수시설 같은 폼페이 문명의 뼈대부터,
음식·포도주·섹스·목욕·화장실 같은 로마인의 핏덩이와 살점까지 꼼꼼하게 뒤진다.

‘베티의 집’은 폼페이 유적 중에서 가장 정밀한 발굴 작업을 거쳤다고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회화와 조각, 장신구가 발굴되었다.
/글항아리
"비열하게 벽보를 지우는 인간은 10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다."
정치 권력을 다루는 6장 '누가 도시를 통치했는가'에서조차, 비어드는 이런 뒷골목 벽보로 독자를 흥분시킨다.
정치 권력을 다루는 6장 '누가 도시를 통치했는가'에서조차, 비어드는 이런 뒷골목 벽보로 독자를 흥분시킨다.
폼페이 유적에서는 지금까지 2500여 건의 선거 벽보가 발견됐다고 한다.
"더없이 훌륭한 젊은이 포피디우스 세쿤두스를 조영관으로 뽑아주십시오" 같은 신사적 벽보도 있지만,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한 음해와 중상모략도 난무했다.
상대방의 벽보를 물감으로 덮어버리거나, 매매춘 여성의 이름을 지지자로 적어 놓는 식의 헐뜯기. 이런 흥미로운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비어드는 인구 1만2000명이었던 폼페이가 직접 투표를 통해 하급직 조영관(造營官), 시의원,
두오비리(duoviri·가장 높은 신분의 두 남자)를 선출하는 과정을 조곤조곤 설명한다.
1만2000명의 절반은 노예였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에서도 또 절반 이상은 투표권 없는 여자와 아이들이었을 테니,
유권자는 겨우 2500명 안팎이었을 거라는 추정. 또 당시의 민주주의에 대한 현대인의 과대평가와 달리,
큼직한 학교의 전교생에 불과할 이 정도 인구는 결국 혈연과 지연과 개인적인 친밀도가 좌지우지하는 선거였을 것이라는
냉소적 분석도 함께 말이다.

7장의 제목은 '육체의 쾌락: 음식, 포도주, 섹스, 목욕'이다.
하나하나가 당시 로마인의 무절제와 사치를 상징하는 명사들이다.
쾌락에 대한 탐닉을 좇는 비어드의 자세는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집요하다. 그는 거대한 남근에 날개가 달린 형태의
종(風磬·풍경)을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한껏 부푼 채 날개까지 달려 있는 모양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기세"라는 게 비어드의
묘사다. 손님을 맞는 건물 입구에도, 빵을 굽는 오븐 위에도, 도로 표면에도 남근 형상이 새겨져 있던 도시.
비어드의 집요함은 폼페이 대표적 유곽의 평면도를 그리는 데까지 이른다. 평면도에 따르면,
이 성매매업소는 작고 비좁은 공간이다. 화장실 하나를 공유하는, 복도에 죽 늘어선 코딱지만 한 방 다섯 개.
남근 숭배 사회에서, 성기 삽입은 기본적으로 쾌락 및 권력과 직결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스·로마 연구자 중에서 보기 드문 여성학자인 비어드는 이 대목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남근을 적극 숭배하는 대부분의 문화가 그러하듯 남근의 힘은 불안을 수반한다"면서
"그것은 아내의 정절이나 자녀의 친자 여부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고,
이상적인 남성성에 부응해야 하는 자기 능력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예외적 여성 고전학자에게 주어진 칭찬이 있다.
이 예외적 여성 고전학자에게 주어진 칭찬이 있다.
학문적인 정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타고난 재능. 2000년 전 폼페이의 유물에 대한
단순 엿보기를 넘어서,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과거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되는 과정이 이 안에 있다.
영국의 정치 잡지인 '프로스펙트'는 최근 투표에서 비어드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7위에 꼽았다.
교황보다는 아래지만,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피터 힉스보다는 높은 순위다.
대중문화가 젊은이를 무차별 칭송하는 데 반발하면서
차별화를 선언한 영국 월간지 'The Oldie'는 2013년 올해의 인물로 메리 비어드를 선정했다.
고전과 역사에서 우리가 교훈을 찾으려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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