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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여자들은 덜 부패하는가

바람아님 2016. 8. 31. 23:23
중앙일보 2016.08.30. 00:44 

'부패 기득권'으로 찌든 세상에 여성 참여가 대안 될까"기회 없었을 뿐" 반론도..'나 하나쯤이야' 유혹 맞서길
“여자는 남자보다 덜 부패하는가?” 요즘 국내외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보니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다. 우선 한국 땅에선 다들 아시는 것처럼 꼭 한 달 후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부정부패를 면면히 조장해 온 접대·청탁 문화를 일거에 뿌리 뽑자는 취지다. 법안의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며 지긋지긋한 전관예우 관행에 일찌감치 반기를 들었던 바로 그이다. 그런가 하면 해외에선 올 들어 도쿄·로마·토리노 등 주요 도시의 수장이 줄줄이 여성으로 물갈이됐다. 비리에 찌든 기성 남성 정치인들에게 민심이 등을 돌린 결과다. 압도적 표차로 최초의 여성 로마 시장이 된 비르지니아 라지의 선거 구호는 이랬다. “새 빗자루로 청소해야 로마가 깨끗해질 수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여자는 남자보다 더 도덕적인가?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그렇다

“국회나 정부 등 공공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부패 수준은 낮아진다.” 전 세계적으로 반부패운동을 주도해 온 국제투명성기구(TI)가 이미 수년 전 이런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근거로 해서다. 일례로 페루 수도 리마에선 여성 교통 경찰 2500명을 새로 뽑아 투입한 뒤 시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뇌물 수수 등 부정부패가 확 줄었다는 응답이 95%에 달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여자들이 도덕적으로 뛰어난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진 않다. 그보단 학연·지연 등으로 끈끈하게 얽힌 이른바 ‘올드 보이 네트워크(the old boy network)’, 한국식 표현으론 ‘형님·아우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기 때문이란 견해가 많다. 비빌 구석이 없다 보니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반면 부패에 휘말려 패가망신할 위험도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여자들이 덜 부패한다고 단정 짓긴 힘들다. 한국만 봐도 ‘김영란’이 있는가 하면 최근 부정 청탁과 전관예우의 대명사로 떠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최유정’도 있지 않나. 그동안 남자만큼 출세하지 못해 기회가 없었을 뿐 만약 기회만 있었다면 여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또 여성 지도자가 많을수록 더 깨끗한 나라가 된다더니 도대체 왜 우리보다 먼저 여성 정상을 배출하고 여성 의원 비율도 훨씬 높은 동남아 국가들이 여전히 부패의 오명을 벗지 못하느냐는 반론도 제기될 법하다. 마침 이 문제에 대해선 미국 라이스대와 에머리대 연구진이 몇 해 전 실마리를 제시한 바 있다. 연구진은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 회피 성향이 클 뿐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간이 작기 때문에 들통날 확률이 높은 경우엔 뇌물 받길 꺼린다는 거다. 그래서 북유럽처럼 부패가 적발될 여지가 큰 민주사회에선 여성들의 청렴도가 두드러지는 반면 동남아처럼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선 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글쎄다

또 다른 관점도 있다. 여자들이 더 도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사가 남자들과 다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부패와 멀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각국의 여성 정치인들은 깨끗한 식수, 더 나은 교육, 공중 보건 개선 등 생활 밀착형 이슈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투입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남성 정치인들은 대형 토목 건축 사업에 더 큰 흥미를 보이는데 주로 이쪽 분야에 부패의 소지가 많다는 거다. 한국에서도 지역구 잇속을 챙기기 좋다는 이유로 국회 국토위원회에 가장 많은 의원이 몰리고 대체로 남성들이 배치되곤 한다. 우리 국회의 경우 여성 의원도 대개 국토위에 관심이 많지만 힘에서 밀려 못 들어간다고들 한다.

자, 여러분은 어느 답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가? 정답이 뭔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 논의에 단초를 제공한 김영란 전 위원장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첫 여성 ○○○’로 사는 부담감을 토로했던 게 생각난다. 자기 때문에 여성 전체가 욕먹을까 봐 처신에 조심 또 조심했다는 얘기였다. 예전보단 훨씬 더 많은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진 지금은? 자칫 ‘나 하나쯤이야’란 유혹에 흔들릴 법도 하다. 여자는 덜 부패하느냐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달렸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