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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84] 코스타리카

바람아님 2016. 9. 13. 23:44
조선일보 : 2016.09.13 03:0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열대생물학자다. 아마 우리나라 학자 중에는 열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1세대일 것이다. 나는 1984년 여름 코스타리카에서 열대생물학을 수강하며 열대에 처음 발을 디뎠다. 1980년대 중반 코스타리카는 국민소득이 2000달러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였다. 수도 산호세 거리에는 우리 현대 미니 트럭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왠지 경찰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당시 원조를 얻으려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세계를 순방했는데 우리 정부는 현금 대신 군복과 미니 트럭을 현물로 지원했단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생태 관광에 힘입어 국민소득 1만달러를 훌쩍 넘겼다.

코스타리카가 이처럼 안정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한 탁월한 정치인의 혜안이 있었다. 1986~1990년과 2006~2010년 두 차례나 대통령직을 수행한 오스카르 아리아스(Oscar Arias Sanchez)는 당시 찢어지게 가난한 코스타리카 국민을 설득해 쓸데없는 개발을 자제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지속 가능한 발전 패러다임을 수립했다. 그는 1987년 중미 국가 지도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모아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나는 그에게 인간과 자연 간의 평화를 이룩한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한 번 더 수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리아스 대통령이 오늘 76세 생신을 맞는다. 그의 리더십으로 코스타리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세계행복지수 14위로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최고다. 국민소득은 두 배도 넘지만,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8위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보다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고 적당히 잘살며 행복한 코스타리카 같은 나라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코스타리카가 되는 꿈을 꾼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되고 DMZ가 온대 지방 최고의 자연보전지역으로 우뚝 서게 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