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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85] 바퀴벌레의 젖

바람아님 2016. 9. 20. 10:20

(조선일보 2016.09.2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Milk'를 우리말로 '우유(牛乳)'라 부르는 게 공평한가? 
실제로 소의 젖을 가장 많이 소비하긴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염소, 양 또는 버펄로의 젖을 주로 마신다.
그렇다고 그들을 각각 전유(乳), 양유(羊乳), 강유(乳) 등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와중에 머지않아 장유(乳)를 마시게 될지 모른다는 연구가 발표되어 학계가 적이 시끄럽다. 
다름 아닌 바퀴벌레의 젖 말이다.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진은 태평양딱정벌레바퀴벌레(Pacific beetle cockroach) 암컷이 새끼에게 먹이는
'젖'을 엑스선 결정 분석법으로 조사해 당과 지방산은 물론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영양가로 비교한다면 소젖의 세 배, 버펄로 젖의 네 배에 이른단다. 
바퀴벌레는 비록 곤충이지만 알을 낳는 종에서부터 포유동물처럼 새끼를 낳는 종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이 바퀴벌레가 바로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종이다.

강원대 산림과학부 박영철 교수는 서울대 내 연구실에서 갑옷바퀴의 사회성 진화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갑옷바퀴는 깊은 산속 썩어가는 나무 안에 굴을 파고 가족생활을 하는 독특한 곤충이다.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들고 환히 웃으며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던 박 교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마치 강아지나 돼지 새끼처럼 새끼 바퀴벌레 대여섯 마리가 엄마 몸에 나란히 매달려 뭔가를 열심히 빠는 사진이었다. 
당시 그는 갑옷바퀴에서 흰개미 사회성 진화에 관한 결정적 단서를 찾느라 바퀴 젖의 영양 분석은 하지 않은 걸로 안다.

여전히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사람이 마실 수 있을 만큼의 젖을 바퀴벌레로부터 짜낼 것인가? 
그리고 정작 생산 라인을 확보하더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바퀴벌레 젖을 마시게 할 것인가? 
바퀴벌레는 워낙 번식력이 좋으니 첫 관문은 어쩌면 뚫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둘째가 문제다. 
뱀을 대수롭지 않게 만지는 사람도 바퀴벌레가 갑자기 부스럭대면 모두 흠칫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