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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86] 코끼리와 벌

바람아님 2016. 9. 27. 14:15

(조선일보 2016.09.27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몸무게가 무려 7000㎏에 달하는 코끼리도 무서워하는 게 있을까? 
사실상 사자도 아랑곳하지 않는 코끼리지만 벌을 끔찍이도 무서워한다. 
코끼리 가죽의 두께나 단단함으로 볼 때 벌침이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의아한데 벌에게 
콧잔등이라도 쏘이면 펄쩍 뛰며 줄행랑을 놓는다. 
통증이란 게 묘해서 꼭 팔다리가 잘려나가야 아픈 게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가 발바닥이나 손가락에 박히면 온몸이 전율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전에 파나마 정글에서 연구할 때 발톱 밑으로 파고든 작은 진드기 때문에 
눈물까지 찔끔거린 기억이 생생하다.

서식처 파괴와 사냥으로 인해 하루에 거의 100마리씩 사라지는 바람에 코끼리는 이제 겨우 40만 마리밖에 남지 않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곳에 따라서는 코끼리가 마을로 내려와 가옥을 부수고 농작물을 짓밟아 인간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인도에서는 종종 술에 취한 코끼리에게 변을 당한다. 땅에 떨어진 과일이 썩는 과정에서 발효해 알코올 
성분이 늘어나는데, 우연한 기회에 술 맛을 본 코끼리들이 허구한 날 해롱거리며 마을을 휘젓고 다닌단다.

아프리카에서는 최근 코끼리 행동에 관한 기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벌을 이용해 인간과 코끼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마을 어귀와 밭 가장자리에 벌통을 설치해 코끼리의 접근을 차단하는 전략이다. 
코끼리는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벌과 흡사한 소리를 내는 드론을 띄워 코끼리를 
숲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기초 연구는 당장 떼돈을 벌어주지 못할지라도 종종 큰돈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엄청난 돈을 들여 밭을 뺑 둘러 전기 담장을 설치해보았건만 영리한 코끼리는 통나무를 가져다 담장을 무너뜨리고 
유유히 건너 들어온다. 이에 비하면 벌통 설치는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꿀도 딸 수 있다. 
'뽕도 따고 님도 보고'가 아니라 '꿀도 따고 코끼리도 안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