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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밥상머리' 논쟁에서 보수·진보는 탄생했다

바람아님 2016. 11. 24. 20:47
(조선일보 2016.11.19 김성현 기자)

美독립과 佛혁명의 격동기 속에서 보수·진보 사상적 기준 제시한 버크·페인의 논쟁 추적
美대선 치른 지금도 큰 영향 미쳐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유벌 레빈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352쪽|1만8500원

따지고 보면 영미(英美)의 보수와 진보는 '밥상머리'에서 갈라졌다. 
훗날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영국 정치가이자 문필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가 
1788년 8월 18일 주최한 만찬(晩餐) 자리였다. 이날 영국 태생의 미국 이민자로 미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진보적 논객인 토머스 페인(1737~1809)이 손님으로 초대받았다.

참석자들 증언에 따르면, 이날 분위기는 시종 즐겁고 화기애애했다. 페인은 이렇게 술회했다. 
"미국 독립혁명에서 버크 선생의 역할을 생각하면 내가 그를 인류의 벗으로 여기는 건 자연스럽다. 우리의 친분은 그런 
이유로 시작됐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이들은 혁명에 대한 견해차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미국 정치학자이자 보수적 싱크탱크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인 저자는 18세기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 속에서
보수와 진보의 사상적 기준을 제시했던 버크와 페인의 논쟁을 추적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응부터 둘은 달랐다. 1789년 10월 버크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는 모두 소멸하고, 그 자리에 괴물들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 같다." 심지어 버크는 같은 해 
프랑스 인권 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대해서도 "무정부주의에 관한 일종의 요약본"이라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반면 페인은 "프랑스 혁명은 분명 유럽에서 일어날 다른 혁명들의 전조"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들의 논전(論戰)은 
사실상 불가피했던 것이다. 편지와 책자를 통한 이들의 논쟁 과정에서 근대 유럽 사상사의 기념비적 저작들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페인의 '인권(人權)'이다.


저자는 역사서와 정치학 서적, 교양서의 수위를 넘나들면서 이들의 논점을 명징하게 부각시킨다.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 등 주요 개념에 대한 인식부터 둘은 달랐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 버크에게 자유는 언제나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개념이었다. 
그는 "지혜나 미덕이 빠진 자유란 가능한 모든 악 중에서 최고의 악(惡)을 의미할 뿐"이며 "이는 훈련이나 규제가 없는 
어리석음, 부도덕, 광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고 믿었던 페인에게 인권과 자유는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전제 조건이었다. 페인이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급진적 혁명에 찬성한 반면, 버크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점진적이고 연속적 개혁을 옹호했다. 
버크가 급진주의나 과도한 신념이 지닐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면, 
페인의 사상은 사회가 자칫 시대착오나 퇴행으로 전락하는 걸 막아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현대 정치에서 좌우를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이 되고 있는 정부 개입에 대해서도 둘은 사뭇 다른 견해를 보인다. 
진보주의자 페인이 "노인, 무력한 유아, 가난한 자를 부양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강조할 때, 
보수주의자 버크는 "어떤 유형의 행정이건 과도한 것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밝힌다. 이 구절들만 놓고 보면 페인은 
영락없이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요, 버크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정신적 지주처럼 보인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당시 백악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저자는 그저 중립적인 전달자나 방관자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의 논쟁이 지닌 의미를 현재적 시점에서 재해석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우파는 대체로 버크의 성향을 공유하면서도 덜 귀족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유산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반면 현대의 좌파들은 유토피아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페인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버크와 페인의 논쟁은 미국 대선이 막 끝난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원서의 
문장을 충분히 음미한 뒤 요령 있게 옮기기보다는 직역투에 가깝게 번역한 구절들은 거칠고 울퉁불퉁해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를 보수로 내몬 건 게으른 진보였다"


(조선일보 2009.04.18 김성호 연세대 교수·정치사상)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지음|이태숙 옮김|한길사|396쪽|2만8000원

926.05-ㅂ748ㅍ/ [정독]인사자실(2동2층)


'보수의 원조(元祖)'로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보수일 이유가 별로 없었다. 아일랜드 출신인 버크는 잉글랜드 주류 사회에서 이질적 존재였다. 

30년 넘게 하원의원으로 살았건만, 출신배경 탓에 평생 '벼락출세자'(New Man)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만년 야당 의원으로 정치역정을 일관했을 뿐더러, 그나마 야당 내 야당이었던 구파[Old Whig] 

소속이었다. 버크는 대영제국의 주류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는 정치적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1770년대 내내 미국 식민지에 대해 유화책을 개진하다 끝내 독립을 지지하더니, 1780년대에는 

인도 총독 헤이스팅스의 탄핵을 추진할 정도로 인도에 대한 식민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하나같이 세계제국의 외길로 매진하고 있던 영국의 국가 대계와는 한참을 어긋난 비주류의 소수의견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주류와 별 인연이 없어 보이던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내놓으며 일약 보수의 

간판논객으로 떠오른다.


버크가 이웃나라의 혁명을 비판한 이유는 영국의 나라 안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의 진보는 명예혁명의 한 세기 전 추억을 떠올리며 프랑스 혁명을 환영했다. 

1789년 갓 출범한 혁명이 종국에는 프랑스를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국가로 바꾸어놓으리라는 기대의 소산이었다.


프랑스혁명 직후 출판의 자유를 얻은 프랑스 

인쇄·출판업자들이 저마다 인쇄물을 찍어 퍼뜨리고 있다. 

1797년의 판화다.


사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1790년 11월의 

시점에서는 그와 다르게 예단할 이유도 없었다. 

비록 전년도 7월 파리의 바스티유 봉기 당시 

유혈참사가 벌어지기는 했으나, 앞으로 다가올 

공포정치와 학살극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테니스 코트의 선서와 제헌의회 소집을 주도한 

제3계급 지도자들도 영국형 입헌군주제를 천명하며 

왕정을 보전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버크가 보기에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정반대의 정당화 원리에 입각해 있었다.

전자는 과거의 헌정질서를 오늘의 폭군으로부터 

수호하려는 일종의 복벽론(復?J論)에서 정당성을 

구했다. 

반면 후자는 과거를 깨끗이 지운 백지 위에 미래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려는 묵시록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야만적 폭력성 그리고 군사독재로의 귀결을 예언한 버크의 남다른 통찰력은 여기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러한 프랑스판(版) '역사 바로 세우기'의 망상은 진보의 게으름 탓이라고 버크는 믿었다. 

책상물림(philosophes)의 회색빛 머릿속에서 탄생한 유토피아의 잣대로 과거와 미래를 재단하려는 프랑스 진보의 

합리주의적 계몽주의가 회의주의와 경험주의로 무장된 영국 보수의 눈에는 탐탁지 않았다. 

살아있는 푸른 현실에 발붙이고 건설적 대안을 고민하여 일상 속에서 끈덕지게 실천하는 매일 매일의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급진적 흑백논리나 혁명 한탕주의 뒤에는 흔히 태만한 지성과 게으른 실천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크를 오른쪽으로 내몬 건 결국 진보였다. 그것도 진보가 왼쪽으로 날아서가 아니라 게으르게 날기 때문이었다. 

이는 또한 오른쪽 날개가 높이 날면 왼쪽 날개도 따라오리라는 믿음의 소산이었다. 

"우리의 적은 우리의 조력자(Our antagonist is our helper)"라는 그가 남긴 명언의 깊은 속내였다.


버크 고전의 국문 완역이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하는 일단이 여기에 있다. 

진보 10년의 몰락 이후 갱생의 길을 고민하기보다 종북(從北)의 과거와 촛불의 추억에 연연하는 진보 일각의 구태는 

버크의 눈으로 보면 게으름의 탓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한 홰 소리를 내며 낮게 나는 왼쪽 날개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버크가 말하는 '높이 나는 보수'다. 

그런데 다시 길 위에 올라선 대한민국 보수 역시 신자유주의의 횡보(橫步)와 더불어 갈 길 몰라 허둥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오늘 버크에게 보수의길을 묻는 이유다.


때마침 버크 전문 학자의 꼼꼼한 번역이 친절한 편집을 만나 순하게 읽히는 국역본으로 나왔다. 

영문학사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글맛을 살리기 위해 그쪽 전문가도 번역에 참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버크 보수주의의 종지(宗旨)를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좌우가 함께 높이 나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435p

926.05-ㅍ36ㅅ

[정독]인사자실(2동2층)

미국독립혁명 및 프랑스혁명 시기의 혁명적 정치사상가였던 

토머스 페인의 대표작 <상식>과 <인권>을 한 권으로 엮었다. 

<상식>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의 인민들에게 자주독립 및 

대의제에 입각한 공화국 수립을 촉구함으로써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인권>은 프랑스혁명을 비난한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에 대항하여 프랑스혁명을 

옹호하면서 자연권에 입각한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을 제시하였다.

<상식>과 <인권>은 독립혁명기의 미국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영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에 나서도록 자극하였다. 

이 책은 과거의 혁명들을 통해 인권의 참뜻을 되새기면서, 오늘날 미국이 스스로의 

제국건설을 위해 자신들의 건국이념을 어떻게 배신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