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데스크칼럼] 한국에서 기업한다는 '죄'

바람아님 2016. 12. 1. 23:36
이데일리 2016.11.23 15:07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뇌물을 주면서 잘 봐달라고 먼저 손을 내민 것도 아니고. 청와대에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관심을 가져달라니 어쩔 수 없이 돈을 준 거죠. 물론 거절을 못한 기업에도 잘못이 있지만 한국에서 권력 실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어요.”


얼마 전 만난 한 10대그룹 고위 관계자의 푸념은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는 장시간 기업은 최순실게이트의 선의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피해자는커녕 죄인이 돼야 할 판이다.

이해가 간다. 당장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고 글로벌전략을 짜야 할 중요한 시기에 총수가 특검에 국정조사까지 불려다니는 형국이니 경영마비는 불 보듯 뻔하다. 어느 기업이 ‘돈 뜯기고 망신당하고 처벌까지’ 받는데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미국 트럼프정부의 출범으로 재계는 내년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진 않을지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수시로 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 기업총수들을 국정조사와 특검이란 족쇄에 묶어둔다면 득보다는 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벌써 ‘국정조사 포비아’를 걱정한다. 검찰 조사도 모자라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국회의 정조준이 불안하기만 하다. 이쯤 되면 사실상 내년도 경영계획은 올스톱이라고 봐야 한다. 검찰 중간수사까진 용케 넘겼지만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다시 세워 시시비비를 따지겠다니 속이 타들어간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증인으로 채택한 총수들에게 망신주기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한 정치인의 작태가 재현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정치권의 국정조사 의도는 다분히 의심스럽다. ‘최순실게이트’가 터진 이후 정치권은 관련 비리를 파헤쳐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의지보단 이번 기회에 정적을 찍어내야 한다는 의지가 더 절실해 보인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의 암투가 끝없이 펼쳐진다. 대선주자들은 또 어떤가.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 건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자신의 대선정국에 활용할까에 급급하다.


그 어디에도 국민을 위한 행보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사색당파인 남인·북인, 노론·소론의 정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극단적인 이념 대결과 정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참에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겠다는 국회의 말은 신뢰하기가 더욱 힘들다.

이런 판국에 기업총수를 내세운 국정조사라니. 롯데그룹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권의 반기업적인 정서는 결국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진 못해도 발목은 잡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술 더 떠 더불어민주당은 “재벌개혁을 이번 정기국회 최대의 화두로 삼겠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란 정말 녹록지 않아 보인다.


최근 세계 각국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머리싸움 중이다. 법인세 낮추기가 대표적인데 이미 영국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기업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현행 20%의 법인세를 15%로 내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역시 법인세 인하를 검토 중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야3당이 법인세율 인상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올해 말 예산국회에서 최고세율 24~25%까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총수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단 취지라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러려고’란 탄식은 한국의 기업가가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이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