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청와대는 총독관저 터에 지은 콘크리트 한옥” 커지는 이전 주장

바람아님 2016. 11. 30. 23:49
[중앙일보] 입력 2016.11.30 01:38
서울 경복궁 뒤편, 북악산 기슭에 위치한 청와대 본관의 모습. 2층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출입문에서 대통령 의자까지 15m에 달한다.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나오다 넘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선거철마다 개조 또는 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경복궁 뒤편, 북악산 기슭에 위치한 청와대 본관의 모습. 2층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출입문에서 대통령 의자까지 15m에 달한다.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나오다 넘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선거철마다 개조 또는 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요즘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곳은 청와대일 테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메인 무대여서다.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제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번 사건의 경위는 가까운 시일 내 소상히 밝히겠다”며 또다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돌아섰다. 여전히 청와대 속사정은 안갯속이다.

대통령의 일터이자, 삶터인 청와대가 ‘불통 1번지’가 된 것이 사람만의 탓일까. 청와대 본관은 1991년 완공 이래 25년간 문제작으로 꼽히고 있다. 내부 소통이 어려운 구조라 리모델링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나온다. 논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건물의 배치, 구조 및 형태, 자리 잡은 터 문제다.


지난 26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에서 집회 참가자와 청와대의 거리(정문 기준)는 200m로 좁혀졌다. 법원이 청운 효자동주민센터까지 주간 행진을 허용하면서다. 그런데 청와대 본관 집무실과 비서동인 위문관의 직선거리는 500m에 달한다. 차로 5분, 도보로 10분 이상 걸린다. 최명철 단우건축 대표는 “민주적인 소통 공간을 앞세우는 미국 백악관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보좌관실, 대변인실이 모두 한 층에 좁은 복도 사이로 몰려 있다”며 "영국 총리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본관과 비서동의 거리를 더 가깝게 재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국회에서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국회 운영위원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다. 재배치를 위한 예산을 마련해주겠다고 여야 의원들이 제안했다.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의 대답은 이랬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뿐 아니라 위민관 등 여러 곳에 있다. 통상적으로 위민관에 있는 집무실도 자주 활용한다. 대통령과 직원 간에 소통에는 지금도 문제가 없다. 개선하라는 의견에 대해 1년간 검토해서 2017년 예산에 반영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

건축계는 청와대의 구조와 형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겉은 팔작지붕의 한옥인데 속은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라는 점에서다. 청와대를 왜 굳이 ‘콘크리트 한옥’으로 지었을까. 당시 설계를 맡았던 정림건축의 김정식 대표(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이사장)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청와대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며 “본관을 2층으로 하려니 지붕을 어떤 형태로 하느냐를 놓고 서양식이냐 한국스타일로 전통적인 양식을 취할 것이냐 하다가 전통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인 2층짜리 청와대 본관의 연 면적은 8476㎡(2564평)에 달한다. 한 층에 1000평이 넘는 공간을 목구조로 짓기에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건축 구조가 ‘콘크리트 한옥’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주요 공공 건물을 ‘콘크리트 한옥’으로 지으며 경쟁하던 역사가 있다. 큰 규모로 경제력을, 한옥 건물로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정통성에 콤플렉스를 갖는 통치자일수록 권위적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일”이라며 “우리의 옛 건축은 목조로 지어야 하는데 큰 규모로 무리다 보니 콘크리트로 모양만 목조 건축의 흉내를 낸, 천하 없는 가짜다”고 일침했다.


청와대가 자리 잡은 터를 놓고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제시대 경복궁을 아래로 보기 위해 지었던 총독 관저의 건물이 있던 곳을 청와대 터로 계승했다는 점에서다. 이승만 대통령 때 총독 관저를 ‘경무대’로 이름만 바꿔 집무실로 사용했고, 윤보선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로 개명했다. 이를 쭉 써오다 노태우 정권 때 지금의 청와대 본관, 관전, 춘추관 등을 신축했다. 최 대표는 “조선시대에도 ‘칠궁’과 같은 사당이나 호위무사 연습 터로만 쓰던 자리였고 자연으로 놔둬야 하는 터”라며 “한 세기 넘도록 외세가 주둔하다 곧 반환될, 서울의 배꼽 용산으로 청와대 이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는 명언이 있다. 43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회 의사당 재건을 앞두고 한 연설이었다. 공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콘크리트 한옥’으로 지어진 ‘구중궁궐’ 속에서 나오는 ‘블루 스캔들’이 더이상 놀랍지 않게 된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