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30 소설가 복거일)
"지도자 잘못 뽑은 보수, 성찰할 때…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 훼손은 안돼"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3] 복거일·소설가
합리적인 경제개혁 정책은 지켜내야
지금은 이 땅의 보수 세력이 깊이 성찰할 때다.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이 도덕적 권위를 잃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니,
보수는 자신의 판단과 태도에 대해 겸허하고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보수의 성찰은 보수라는 개념을 또렷이 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보수는 잇고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말은 잇고 지킬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말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잇고 지키는 대상이 결정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수의 대상은 사회 구성 원리다.
우리처럼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잇고 지키는 태도와 사람들을 가리킨다.
전체주의 사회에선 전체주의 이념과 명령 경제를 잇고 지키는 태도와 사람들이 보수라 불린다.
우리 사회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 철저하게 지향하는 정당과 후보들을 지지해왔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추문으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거두어들였다.
근본적 요인은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최태민 일가의 조종을 받았다는 의구심이다.
어느 지도자나 많은 사람의 조언을 듣고 소수 보좌관에게 크게 의존한다.
박 대통령의 경우, 그런 의존이 지나쳐서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법을 어겼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은 보수로선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럽고 두고두고 성찰할 일이다.
널리 알려진 '최태민 추문'에도 박 대통령이 늘 높은 지지를 받은 사실과
현 정권의 비정상적 움직임이 제때 바로잡히지 않은 상황은 특히 고뇌할 문제들이다.
그런 성찰은 당연히 넓고 깊어야 한다.
정치의 핵심은 지도자를 뽑는 일인데, 그 중요한 일에서 보수는 결정적으로 실패했다.
다른 편으로는 성찰 대상을 명확히 하는 일도 긴요하다.
실패한 것은 보수가 지지한 지도자였지 보수가 추구한 이념과 체제가 아니었다.
인류의 경험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장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증명이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파괴에서 일어나 자유롭고 풍족한 사회를 이룬 우리 역사는 많은 후진국에 영감을 주었고
그들이 발전할 길을 보여주었다.
궂은 날씨에도 200만 가까운 시민이 촛불을 들고 평화롭고 질서 있게 시위하는 모습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물결을 일으켰다. 참가자들은 뿌듯했고 외국 기자들은 감탄하는 기사들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멋진 시위는 더 깊은 수준에서 대한민국의 성취이기도 하다.
자유가 보장되고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시위를 축제로 만들 수 있다.
압제 사회 하의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킬지언정 그런 시위를 할 수는 없다.
보수에게 충격을 준 이번 시위보다 더 확실하게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도 드물다.
다른 소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여리다.
가꾸기는 무척 힘들지만 잠시만 외면해도 시들기 시작한다.
법치와 재산권이 확립되어 번영을 누린 홍콩이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에 반환된 뒤 점점 압제적이 되어가고
그런 상황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경찰의 탄압을 받는 모습은 이런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준다.
한 번의 추문으로 폐기되거나 퇴색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잇고 지킬 만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겠는가?
당연히, 보수는 현 정권의 정책들을 모두 폄하하고 폐기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비록 도덕적 권위를 잃은 대통령이 추진했지만, 그 사실만으로 정책들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맞고 합리적이면, 좋은 정책이다.
북한 주민들의 짓밟힌 인권에 관한 국제연합 결의안에 기권한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 그른 것은
그것이 인도(人道)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당장 급한 것은 경제 분야다.
현 정권의 경제 개혁 정책을 폐기하고 민중주의적 법들을 만들려는 야당의 시도는 우리 경제를 심중하게 위협한다.
비록 박 대통령의 정치력 부족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지만, 현 정권의 경제정책들은 거의 다 옳다.
두드러진 예외는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것들뿐이다. 민중주의는 늘 인기가 높은 데다가 야당은 다수다.
당연히, 막기 힘들다. 이 중요한 과업에서 보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분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새누리당은 집권당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
큰 위기를 맞으면 이합집산이 정치인들의 생리라서,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래도 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에선 모든 새누리당 의원의 이익이 합치한다.
보수정당의 깃발 아래 모두 모여 시장경제를 지키는 비장한 후위 작전을 펼치는 모습을 기대한다.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1]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국민보다 수준이 훨씬 낮은 사이비 保守 정치의 실패" [2]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 "정치가 '私的 사업' 전락해 국가표류…이익보다 가치 따지는 新보수로 가야" [3] 복거일·소설가 : "지도자 잘못 뽑은 보수, 성찰할 때…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 훼손은 안돼" [4] 강원택 서울대 교수: "'국가가 끌면 시민은 따라야' 思考 버리고 비정규직 등 청년 고민도 껴안는 保守로" [5] 소설가 이문열 :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6] 김호기 연세대 교수 : "市場보수·安保보수를 넘어서는 혁신 보여줘야 위기 탈출" [7] 박지향 서울대 교수 : "따뜻하고 도덕적 보수로 거듭나 양극화·청년층 좌절 치유해야" [8] 유종호·前 예술원 회장 :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9]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 "권위주의 아닌 민주적 보수로 내각제·완전국민경선 도입을" [10·끝]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 "조선시대 史官은 임금 감시한 'CCTV'… '권력의 맛' 경계한 선비정신 되새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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