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01 김성현 기자)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4] 강원택 서울대 교수
"시대 뒤처진 보수 정치권… 세대교체해야"
강원택(55)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난 지난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제3차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강 교수는 "퇴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이전보다 분명 진일보했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상(眞相)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현재 한국정치학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학회 의견과 무관한 정치학자 개인 의견"이라며 말문을 뗐다.
―박 대통령의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권력 유지의 핵심 요소는 권위와 신뢰다.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 동의를 이끌어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데,
권위와 신뢰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는 사실상 통치가 불가능하다. 물러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강원택 교수가 지난 29일 청와대가 보이는 서울 광화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촛불 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몇 차례 광화문광장에 나갔다. 20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상황에서도 주변 상점들은 평화롭게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툭하면 시위가 폭동과 약탈로 번지는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말인가.
"지금 한국 사회가 혹독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철저하게 정상적인 헌정(憲政) 시스템 속에서 평화롭게 위기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도 헌정 파괴 같은 위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게 정착했다는 걸 보여준다."
―낙관적인 해석 같다.
"그렇다. 4·19 세대나 '386 세대'와 비교하면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처럼 20~30대가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던 1980년대 시위 방식과 비교하면 '촛불 집회'는 한층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가 여전하다.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공유하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보여줘야 하는 친박 세력이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해 나선 모양새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당내 계파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한국 민주주의 회복이나 발전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야권이 대선을 눈앞에 두고 정치적 수지타산에 혈안이 된 모습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서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식이 정치권을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보수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성장과 안보 등 한국의 보수는 긍정적으로 기여한 대목이 많다.
하지만 보수가 발 빠르게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보수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에 따라 이념적 색채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이란 무슨 뜻인가.
"국가가 모든 걸 끌고 가면 시민들은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사고방식,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1인 지배적 측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주화·세계화 시대를 맞아서 민간 영역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과거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보수의 약점은 뭔가.
"북핵(北核)과 안보 문제뿐만이 아니라 양극화와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 청년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에 대해서도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 정치권의 세대교체도 필요하다."
―내각책임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축으로 하는 1987년 체제를 뛰어넘어 내각책임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불통(不通), 일방통행, 여론 무시'는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단임 대통령제가 지닌 근본적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경제성장 신화를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수퍼맨이나
메시아 같은 존재로 국민에게 인식됐다. 하지만 더 이상 초인적 지도자는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높다.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감은 대략 세 가지 때문이다.
한국에서 내각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제2공화국의 무능과 혼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대한 강렬한 기억,
국회와 정당에 대한 낮은 신뢰도 등이다.
하지만 1인 지배가 아니라 정당 중심의 국정 운영,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는 미래의 장기적 과제를
추진하는 데 적합한 시스템이다."
―내각제가 안정적이라는 뜻인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마련한 스웨덴의 사민당, 영국병(病) 치유에 나섰던 영국 보수당,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기민당은
모두 내각제에서 정국 운영을 주도했다.
학부모들이 속앓이하는 교육 문제를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내각제는 불안정하다'는 인식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개헌과 탄핵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질서 있는 퇴진'이든 탄핵이든 긴급한 정치적 과제를 우선 해결한 뒤 본격적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여야(與野)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내각제를 포함해 개헌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일정을 제시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1]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국민보다 수준이 훨씬 낮은 사이비 保守 정치의 실패" [2]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 "정치가 '私的 사업' 전락해 국가표류…이익보다 가치 따지는 新보수로 가야" [3] 복거일·소설가 : "지도자 잘못 뽑은 보수, 성찰할 때…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 훼손은 안돼" [4] 강원택 서울대 교수: "'국가가 끌면 시민은 따라야' 思考 버리고 비정규직 등 청년 고민도 껴안는 保守로" [5] 소설가 이문열 :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6] 김호기 연세대 교수 : "市場보수·安保보수를 넘어서는 혁신 보여줘야 위기 탈출" [7] 박지향 서울대 교수 : "따뜻하고 도덕적 보수로 거듭나 양극화·청년층 좌절 치유해야" [8] 유종호·前 예술원 회장 :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9]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 "권위주의 아닌 민주적 보수로 내각제·완전국민경선 도입을" [10·끝]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 "조선시대 史官은 임금 감시한 'CCTV'… '권력의 맛' 경계한 선비정신 되새겨야" |
[중앙시평] |
21세기 한반도의 지정학(2016.1203) 중국의 속셈(2016.0220) |
블로그 내 보수.진보 논쟁을 위한 고전 : |
美독립과 佛혁명의 격동기 속에서 보수·진보 사상적 기준 제시한 버크·페인의 논쟁 추적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유벌 레빈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352쪽|1만8500원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지음|이태숙 옮김|한길사|396쪽|2만8000원 926.05-ㅂ748ㅍ/ [정독]인사자실(2동2층) 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435p 926.05-ㅍ36ㅅ/ [정독]인사자실(2동2층) |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의 대한민국… ] "市場보수·安保보수를 넘어서는 혁신 보여줘야 위기 탈출" (0) | 2016.12.03 |
---|---|
[세상읽기] 접두사와 접미사의 정치학 (0) | 2016.12.02 |
[위기의 대한민국… ]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0) | 2016.12.02 |
[데스크칼럼] 한국에서 기업한다는 '죄' (0) | 2016.12.01 |
“청와대는 총독관저 터에 지은 콘크리트 한옥” 커지는 이전 주장 (0) | 2016.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