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10 어수웅 기자)
단어의 사생활ㅣ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ㅣ김아영 옮김ㅣ사이ㅣ384쪽ㅣ1만7500원
아시는지. 당신 손가락에 지문이 있듯,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지문이 있다.
'언어 지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결국 내 언어다.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텍사스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단어'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실질적 의미를 담은 내용어보다 조용히 문장을 지원해주는 기능어.
가령 인칭대명사, 지시대명사, 조사 같은 것들 말이다.
뉴욕시장을 지낸 줄리아니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해보자.
우선 실제 삶. 2000년 봄 앞뒤로 줄리아니 시장의 인생은 뒤집혔다.
뉴욕 시장으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상원의원 도전을 선언하고 전면적 선거운동을 시작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 전립선암 선고였다. 줄리아니는 선거운동을 포기했고, TV 생방송에 나와 소원(疎遠)했던 아내와의 이혼을
발표했다. 이후 시민들은 그를 겸손하고 진실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전에 그는 같은 시민들로부터 '무신경한 깡패' '분노와 독선으로 끓어오르는 남자' 등의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사용한 언어.
페니베이커 교수는 줄리아니 시장이 사용한 단어를 계량화했다.
우선 암 판정 직후 '나'라는 인칭대명사의 사용이 급격히 늘었고, 어려운 말을 적게 사용했으며,
긍정적 및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시장 1년 차 때보다 암 판정 이후 '나는, 나를, 나의'의 사용 빈도는 350% 증가했다.
반면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의 사용은 60% 감소했다.
저자는 인칭대명사 '우리'가 거만하고, 감정적으로 거리가 있고, 지위가 높을 때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화법에서 사용하는 '우리'를 떠올려보라.
페니베이커 교수는 고전에서도 이 비교를 시도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 마찬가지였다. 리어왕이 오만했던 시기에 사용하는 대명사와 따뜻하고 정직했던 시기의
대명사 사용 빈도는 줄리아니 사례와 놀라울 정도로일치했다.
리어왕이 아직 오만했던 희곡 1막 시절과 따뜻하고 겸손한 리어왕을 보여주는 5막의 비교.
대명사 '나'의 사용 빈도는 370% 늘었고, 1막의 모든 문장에서 사용하던 '우리'는, 5막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페니베이커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툭 내뱉는 짧고 하찮은 단어들이 우리에 대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알려준다"고 했다.
리더십, 지위와 권력, 정직성, 감정, 성격, 성별, 나이, 사회적 계층, 격식을 차리는 정도에 따라
이런 '하찮은 기능어'의 활용이 다르다는 것.
레이디 가가, 패리스 힐튼, 오프라 윈프리, 존 매케인 등 유명인사의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언어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시도다.
원제: The Secret Life of Pronouns: What Our Words Say About Us.
'人文,社會科學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과 길] 송시열이 만들고 일제가 유포한 '현모양처' 사임당 (0) | 2016.12.15 |
---|---|
[북 인터뷰] 밀수 강국이 경제 대국, "미국이 영국 산업혁명 훔쳐 패권 장악했다" (0) | 2016.12.13 |
[책 속으로] 보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본능이니까 (0) | 2016.12.10 |
올리버 색스·폴 칼라니티… '글 잘 쓰는 의사' 약진 (0) | 2016.12.10 |
[당신의 리스트]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의 신뢰할 만한 음식 도서 5 (0) | 2016.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