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세계에서 미인계는 전형적 공작 수법이자 치명적 유혹이다. 영어권 표현은 ‘허니 트랩’(honey trap). 말 그대로 ‘달콤한 덫’이다. 2009년 영국의 국내 보안국 엠아이5(MI5)는 <중국 첩자들의 위협>이란 제목의 리플릿을 자국 금융기관과 기업체 수백 곳에 배포했다. 중국 스파이들이 접근해 성관계 등을 미끼로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경보였다. 앞서 1986년 이스라엘의 비밀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기술자 모르데하이 바누누가 영국 일간 <타임스>에 그 사실을 폭로해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이스라엘은 바누누를 체포하려 혈안이 됐고, 신문사는 그에게 런던에 은신처를 제공했다. 불안감에 짓눌렸던 바누누는 우연히(?) 만난 미녀와 이탈리아로 밀월여행을 떠났는데, 약을 탄 술을 마시고 깨어나 보니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였다.
옛 동독 첩보기관 슈타지의 마르쿠스 볼프가 1950년대에 벌인 로미오 작전은 ‘달콤한 덫’의 전설이다. 제2차 대전 직후 서독은 젊은 남성이 절대 부족한 까닭에 독신녀들이 정부와 관공서, 산업계의 요직에 대거 진출한 참이었다. 볼프는 젊고 지적인 미남들로 특별팀을 꾸려 서독에 침투시켰다. 서독이 강력한 신원 식별 시스템을 개발하기 전까지 로미오팀은 서독 총리실과 나토(NATO) 수뇌부까지 접근해 정보를 빼냈다.
요즘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기업인 시절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벌였다는 섹스 파티의 동영상을 러시아가 갖고 있다는 정보 문건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영국 해외정보국 엠아이6(MI6)의 전직 요원이 러시아 스파이에게 얻은 첩보로 문건을 작성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넘겨준 뒤 잠적해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췄다. 트럼프 쪽은 ‘가짜 뉴스’라며 발끈했지만, 진위와 상관없이 초침이 돌기 시작한 시한폭탄이 됐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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