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7.02.08 18:46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지금까지 적응을 뒤돌아보면 저는 쉽게 단정하고 판단하고를 무수히 반복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가 면과 관련된 것입니다.
저는 면을 좋아해 냉면, 소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말고도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냉면을 좋아합니다. 물론 그 맛은 북에서 먹던 맛과는 조금 다릅니다. 먹는 방식 역시도 조금은 다릅니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아주 신기하게, 이상하게 바라보던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성들이 면을 먹는데 젓가락을 뱅뱅 돌리고 둘둘 감아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숟가락에 정성껏 담아 홀짝홀짝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제 눈에 비친 모습은 일하는 사람 같지 않고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하는 한심함 그 자체였습니다. 마주 앉아 같이 먹는 사람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느 순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먹는 것이 옷에 국물이 떨어지는 대참사를 방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냄으로써 신경 쓰이던 상황을 피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삶의 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정착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받아들인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혜를 주고자 다가오는 대상을 살갑게 대하지 못한 때가 더 많았습니다. 삶의 지혜는 본의 아니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호의를 갖고 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 갑갑한 모습,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게 됩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실망을 안겨주어야 했을까? 왜 그렇게 한 가지 모습만 보고 쉽게 단정을 했을까? 어쩌면 많은 것을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북한 사회가 나를, 우리를 그토록 자기 안에 가두어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에 그 문을 활짝 연 대한민국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는 현재에 감사할 뿐입니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넓은 마음가짐, 귀 기울이는 습관, 해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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